무슨 말인가 의아하겠다. 날조꾸는 뭐고, 쓸럽은 또 뭔가? 날조꾸는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의 줄임말이다. 쓸럽은 쓴다의 쓸과 클럽의 럽, 합성어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글 쓰는 클럽이 바로 `날조꾸 쓸럽`이다.
지난 4일 포항문학 부설 문예아카데미 16기 개강식이 포항시청 문화복지동에서 열렸다. 올해는 따로 광고하지 않았는데도 등록한 사람이 스무 명을 넘었다. 대부분이 40, 50대 중년으로 저마다 가입 동기와 포부가 진지했다. 무엇보다 배움에 대한 열의와 몸에 밴 부지런함이 돋보였다.
그때 문득, `날조꾸 쓸럽`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그저 `날마다, 꾸준히, 조금씩 쓰는 것`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날조꾸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전업 작가가 아니고서야 날조꾸 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날 16기로 오신 분 중에 “나는 야간 전문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합니다. 문예아카데미가 낮에 있었다면 저는 못했을 겁니다. 매주, 문학이 있는 목요일 밤에 공부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렙니다.”라고 말한 분이 있었다. `나는 야간 전문입니다`란 말이 그대로 가슴에 꽂혔다. 곱씹어도 참 멋진 말이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는 글쓰기의 제1원칙이다. 학창시절 일기쓰기가 그 출발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만 날조꾸 해왔다면 자서전 따로 쓸 필요가 없다. 애석하지만 그런 사람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렇다고 늦은 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날조꾸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된다. 올해 문예아카데미에 들어온 분들에게 날조꾸 말고는 별로 할 얘기도 없다.
지난해 세 번째 시집 `사슴공원에서`를 출간한 고영민 시인은 매일 밤 자정에 일어나 두세 시간 시를 쓴다. 몸에 밴 습관이고,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렇게 매일 밤 공들인 시간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집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정호승 시인은 조금 다르다. “나는 끊임없이 메모를 해두었다가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몰아서 쓴다. 한번 시 쓰기가 시작되면 그 긴장이 몇 달간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다른 일은 손대지 않는다”이런 방법이 날조꾸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끊임없는 메모와 몇 달간 계속`이 바로 날조꾸다.
원고지로 하루 6~7매가 적당하다. 구상이나 퇴고를 포함하지 않는 그야말로 초고 쓰기다. 구상과 퇴고에 부담을 가지면 초고 쓰기가 어렵다. 생각이 많으면 몸(손가락)이 둔해진다. 날조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이라도 반드시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날조꾸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쓰기`보다 `생각하기`와 `고치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 쓰기의 절차는 세 단계다. 생각하기-쓰기-고치기. 모든 시가 창의성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모든 시 쓰기는 이 세 개의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시의 나라에 입국할 수 없다. 내가 문예창작 강의실에서 확인한 바로는, 대부분의 습작기 학생들(일반 시민도 결코 다르지 않다)이 생각하지 않고 쓴다. 또 생각하고 썼다고 하더라도 고치지 않는다. 한 편의 시를 쓴 다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 아주 냉정하게. `나는 이 시를 쓰기 위해 얼마만큼이나 생각했는가. 이 시를 쓰고 나서 몇 번이나 고쳤는가`새로운 의미와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쓰지 마라. 쓰고 나서, 최소한 열 번 이상 소리 내어 읽으며 고치지 않았다면 발표하지 마라. 쓰는 단계가 가장 쉽다. 생각하기가 어렵고, 고치기는 더더욱 어렵다”
어느 문예지에 발표한 이문재 시인의 심사평이다. 쓰는 단계가 가장 쉽다는 말에 공감할 때까지 우리는 `날조꾸` 해야 한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쓴다는 행위가 밥 먹고 숨 쉬고 똥 누는 일이 될 때까지. 그건 그렇고 `날조꾸 쓸럽`에 관심 있는 분은 `나중에, 다음에`라고 변명하는 자기 자신에게 한번 연락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