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모두가 자유 의지와 성격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 되면 각자의 부족함을 메우고, 서로 위하면서 살아가려고 결혼을 한다. 모르던 남녀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으로 자식을 낳는다. 그들이 청년에서 노년, 그리고 무덤 앞까지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함께 인생 여행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경이롭고, 신비하다.
긴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모험을 하게 된다. 남남이던 두 사람이 만나 일생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때로는 기뻐하거나 슬퍼 울면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투기적인 투자이다. 이렇게 그들은 이해와 갈등을 반복하면서 공동체인 가정을 꾸려 나간다.
두 사람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성격은 어떤지 전혀 몰랐다. 완전히 낯설었고 성격이 다른데도, 어떻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놀라운 것이다. 가정은 혼탁한 현실에서 사랑을 적용해야하는 위태위태한 모험의 실험장이다.
삶에서 다툰 횟수를 합하면 벌써 원수가 되었고, 깨어진다면 100번도 더 깨질 듯이 살아 왔는데, 상대의 죽음 앞에서는 남은 자가 “저승에서 다시 보자”고 하면서 운다. 싸웠는데도 헤어짐에서 울다니, 죽음 이후에도 보고 싶다니, 이처럼 가정이란 신성한 곳이다.
현대의 결혼 당사자들은 대부분 `잘 살아보려고, 행복하려고, 사랑하기에`등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하면? 사랑이 식어지면 헤어져야 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삶에는 고통이나 괴로움 등을 극복해야 비로소 행복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성찰과 사랑의 태도가 중요하다.
살아가는 것은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좋은 경치는 잠시뿐 오를수록 주위는 황량하고, 절벽을 만나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도 수없이 겪게 된다. 어떤 때는 텐트가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도중에 상대자를 하늘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
성경에는 `결혼 후에는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될지니라`라고 적혀 있다.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겨 내면서 살아가도록 자식을 떠나보내야 한단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으로서 의지하게 하면 안된단다.
결혼하면 정신적으로는 부부간에 마음을 서로 합해야 한다. 돈이나 학벌, 그리고 직업을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에 서로의 마음이 분리되어서 깨어지는 가정을 많이 본다. 부자 일수록 화합하는 정신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고, 직업이 좋아 보여도 미래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또 돈이란 한 세대를 지탱하기가 어렵다. 결혼을 하면 돈이나 학벌 등을 사랑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또한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성(性)적인 것이다. 성을 부부라는 테두리에 묶어두었다. 육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도 절제가 필요하다. 성기는 자기 몸에 있어도 실제 소유권은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남편을 인정해 줘야 한다. 일일이 간섭하거나 자존심 등을 망가뜨리지 말라. 그리고 아내는 약한 그릇이다. 깨지기 쉬우니 상처 입을까 걱정을 해야 한다. 귀중한 보물과 같이 여겨야 한다.
결혼 후에 부부는 서로와 자녀에게는 무능한 존재가 돼야 한다. 부부 서로는 유능한 자기 몫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랑 속에, 무능함 속에 있어야 한다. 남편이 강하면 아내가 죽어나고, 아내가 강하면 남편이 죽어난다. 부모가 강하면 자식이 죽어난다. 부모의 사랑과 무능함에서 각자는 능력을 최대한 나타낼 수 있다.
가정이란 인간 무리들 속에서 제일 기초가 되는 공동체로서 신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삶 전부는 가정에서 이뤄지고, 가정에서 일생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은 죽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