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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원에 부쳐

등록일 2013-05-08 00:12 게재일 2013-05-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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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문 한동대 교수

몇 년전 불탔던 숭례문이 어려운 공사과정을 거쳐 지난 4일 복원식을 가졌다고 한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묻지마 방화`로 불타고 있어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 하던 것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이번 복원에 관한 스페셜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복원을 위해서 많은 전문가와 인간문화재들이 참여했고, 일제시대 잘못 복원된 것들도 고쳐내고, 기둥이며 지붕틀은 말할 것도 없고 기와며 단청들도 옛것을 복원하고자 무수한 회의와 시험을 거쳤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1961년도 복원사업`직전의 실측도면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인데, 이런 것 남겨진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원형을 되살리려고 해도 1961년 이전의 실측도면 마저 부재여서 남겨진 사진들을 통해 과거의 형태며 부재의 크기를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 당시 한 복원팀원의 아드님이 복원담당 설계사무소에 고건축을 배우러 갔다가 숭례문 실측도면 청사진 한부를 얻어 놓은 것이 다행히 발견돼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 이뤄 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사를 지휘 했던 신응수 대목장은 일부 타버린 기둥의 복원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기둥이 일부 타버렸더라도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타버린 부분만을 새 목재로 접착해서 이용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중수할 때마다 새것으로 바꾸게 되면 몇 차례 복원 뒤에는 원래의 목재들이 다 사라지게 되기에 강도는 약간 떨어질지 몰라도 새 부재를 옛것과 결합해서 역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재학시절 중고교 선배이던 미술선생님이 조각습작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남대문 복원시 버려지는 목재들이 매우 잘 건조되어 많이들 구입했다고 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숭례문의 부재들을 손쉽게 교체하고 없애버렸다는 소리인가?

유학시절`역사물 보전`이라는 관련과목 수강을 통해서 얻은 지식에 의하면 유럽의 역사적인 건물들을 보면 끊임없는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경우가 많음이 사실이나 그 원형이 잘 보전돼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복원의 역사가 자재들 속에 그대로 표현돼 있으며, 이것 자체가 그대로 역사가 돼 버린다고 했다.

역사물의 보전을 위해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나라들은 매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돈도 많이 투여하지만 그 복원 기술 자체가 대단히 발달되고 이론도 잘 정립돼 있다. 이들은 우리가 무시해 버릴 만한 것들에도 큰 가치를 찾아내고 있으며, 역사지구 내지 역사물 지정 그리고 그 보전방법들이 매우 심각하게 집행이 된다.

신응수 대목장은 한탄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만 거치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옛 기술들이 많이 보전됐을 것인데, 이제 거의 사라져 그 복원이 너무 어렵기만하다고 말이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만하더라도 일제시대에 있었던 복원시 벽체 내지 천정을 구성하던 몇 개 석재들이 옛자리를 찾지 못해 입구 앞쪽에 방치돼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지만 남겨진 역사물은 너무나 적다. 석조가 아닌 목재로 지어져서 끊임없는 왜란과 호란으로 불타 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이 너무나 가난하고 힘이 없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옛것에 대한 자부심 부족과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던 무지함이 현재의 안타까운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공식을 적용한다면 불과 100여 년 전 잃어버린 우리의 북방영토도 안타까움을 크게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물을 제대로 보전하고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해 내려고 노력함이 우리 한국의 지속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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