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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역마문학제에 가서

등록일 2013-05-23 00:25 게재일 2013-05-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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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하동은 서울에서 버스로 네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난 금요일 하동에서 김동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역마 문학제`가 있었다. 나는 김동리 선생 탄생 100주년 사업추진단에서 개최한 이 행사에서 김동리 문학에 대한 발표를 하기로 돼있었다.

버스는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앞에서 예정된 8시30분에 맞추어 떠났지만 그날이 바로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더디게 달렸다. 일곱 시간이 넘게 걸려 가게 되니 행사는 예정보다 두 시간 이상 늦어졌다.

김동리의 단편소설`역마`가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씌어졌다 해서 하동에는 역마공원도 꾸며져 있고, 몇 년 만에 보는 화개 장터는 놀랄 만큼 변모, 그야말로 번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돼있었다.

나는 그곳에서`김동리의 일제말기 넘어서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내게 이 발표는 매우 중요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준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김환태의 순수문학론이나, 조지훈 또는 오장환의 일제 말기 행적이나, 작년에 백석의 일제 말기 번역 작업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일제 말기라는 어려운 시대에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윤리적 감각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라도 문학적 순수성을 지켜나가고자 한 사람들의 행적과 작품을 살피는 것이 내 의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세상은 언제나 세속적인 욕망과 힘의 논리가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그 흐름 밑에는 진정한 의미의 수류(水流)가 있음을 이들을 접하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김동리는 그런 내 공부길에 하나의 결정적인 포인트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이로써 나는 역사와 문학을, 그리고 사람을 이데올로기에 비추어 판단하는 인습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동리의 소설 가운데`두꺼비`라는 것이 있다. 이 작품은 이야기 중에 하나의 설화를 소개한다. 능구렁이에 잡아먹힌 두꺼비는 그 배속에서 알을 까서 종내 능구렁이 뼈 마디마다에서 새끼 두꺼비들이 벌개미들이 쏟아져 나오듯 쏟아져 나온다는 설화가 있다는 것이다. 김동리는 나중에 이 설화의 의미를 설명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이 두꺼비 설화가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 있음은 그것이 우리 민족의 사고 방식이나 의지 같은 것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설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능구렁이 뼈 마디마디에서 두꺼비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온다는 것인데, 그것은 두꺼비는 죽을지언정 두꺼비의 의지는 죽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제 말기에 민족은, 그리고 김동리 자신은 일본이라는 능구렁이에 잡아먹힐지언정 그 정신만은 죽지 않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그는 그 어려운 때에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해방 후에 김동리는 분단이 현실화 되고 좌우익 대결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 순수문학론을 기치로 이른바 우익 문단을 이끄는`실권자`의 역할을 해냈다. 김동리의 이름은 이때부터 좌우익 대립이나 참여문학론, 순수문학론의 대결, 현실비판적인 문학과`어용문학`의 갈등 같은 이름들에 의해 오염됐다.

그러나 일제 말기 김동리가 보여준 행적과 작품들은 그에게 있어 문학의 순수라는 것이 결코 무사상, 무정치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속류 정치보다 더 깊은 정치, 민족의 명운이 경각에 걸렸을 때, 자기 삶을 걸고 문학의 가치를 지키는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하동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 또한 멀고 멀었다. 나는 함께 갔던 일행들과 헤어져 구례구역에서 KTX를 타고 겨우겨우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기차를 타고 피로에 지쳐 하면서도 나는 한 인간의 내부를 이렇게 알게 된 것을 기쁘고 다행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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