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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등록일 2013-07-10 00:17 게재일 2013-07-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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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 교수·임상병리학과

얼마전 부산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들은 이야기다. 혼기가 꽉찬 과년한 딸을 둔, 성격이 매우 급한 경상도 중년 남자가 있었다. 딸이 신랑감으로 데려오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성격이 화끈하지 못하고 느릿느릿 한 탓에 계속 사윗감으로 퇴짜를 놓았다. 그에게는 사윗감의 재력, 인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첫째도 성격, 둘째도 성격이었다. 자신처럼 성격이 급하고 화끈해야지만 사윗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놀라서 누구시오? 하며 현관문을 열어보니 젊은 청년 하나가 집 안으로 쑥~ 들어오면서 천정이 떠나 갈 듯한 목소리로 “어르신, 늦은 시간 실례합니다. 화장실 좀 쓰겠습니다” 하며 다짜고짜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을 채 닫지도 않고 볼 일을 보기 위해 바지를 벗으려던 청년은, 바지 벨트가 잘 풀리지 않자, “어르신, 칼 좀 빌려주십시오” 하더니 받은 칼로 자신의 벨트를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중년 남자는 그 젊은 청년의 화통함이 너무 맘이 들었다. 볼 일을 마치고 나오는 청년에게 “이보시오, 내가 젊은이의 화끈한 성격이 맘에 드는데, 혹시 결혼하셨소? 나에게 과년한 딸이 있는데…. 혹시….”라는 중년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젊은 청년은 “아닙니다. 아직 미혼입니다. 좋습니다. 결혼하지요”라 답했다. 중년 남자는 “자네 역시 화끈하군, 뭐 이래 저래 시간 끌 필요 있겠나? 지금 당장 합방 하게나”라며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켜버렸다. 장인과 사위 두 사람의 죽이 척척 잘 맞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신방(新房)에서 “사람 살려~”라는 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중년 남자는 놀라서 황급히 달려가 보니, 화끈한 젊은 청년 사위가 어제 칼로 잘라버렸던 그 벨트로 자신의 딸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는 것 아닌가? 중년 남자는 벨트에 얻어 맞고 있던 딸의 앞을 가로막고 다급한 목소리로 “아니, 이보게 사위, 자네 내 딸에게 왜 이러나?”라고 사위에게 다그쳤다. 그러자 사위 왈 “장인 어른, 아니 이 여자가 간밤에 저랑 합방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있잖습니까?”라고 흥분하며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성향을 얘기할 때 흔히들 `빨리 빨리` 또는 `양은 냄비`를 닮았다고 한다. 양은 냄비가 빨리 끓고 빨리 식어 버리듯이 어떤 일에 쉽게 흥분했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쉽게 잊어버리는 한국인의 성향을 폄하하는 말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 쉽고 빠르게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양은 냄비의 속성은 패스트푸드 시장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훌륭한 강점이 된다. 이처럼 기술과 사회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제품 시장의 변화도 매우 빨라서 생산 시스템도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소량다품종을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의 `빨리 빨리 주의`와 `양은 냄비 근성`이 오히려 국제 시장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 온 것이다. 스마트 TV, 스마트폰이 그러한 성공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현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근성을 잘 파악하고 빠른 감각으로 대응하며 적절히 활용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히딩크가 한국 축구 대표 선수들 개개인의 근성을 빠른 시간 안에 명확히 파악했고 이를 잘 융화시켜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에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양은 냄비` 근성을 비난만 할 것만 아니라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무한한 원동력으로 잘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 주의, 양은 냄비 근성은 이제 흠(欠)이 아니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국제적 경쟁력이다. 오죽 했으면, 우리나라의 국가번호가 82번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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