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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재의 불안·부조리 파헤쳐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7-12 00:45 게재일 2013-07-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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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88쪽
인간 존재의 불안과 부조리를 파헤친 사데크 헤다야트의 대표작 `눈먼 부엉이`(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됐다. 사데크 헤다야트(1903~1951)는 테헤란 명문가 출신으로 파리에서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란의 전통에 서구의 문학 기법을 결합하여 발전시킨 현대 페르시아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눈먼 부엉이`는 한 가난한 예술가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이자 동시에 절망의 원천이 되는 한 여인의 시체를 암매장한 뒤 술과 아편의 힘을 빌려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신기루의 세계로 빠져드는 초현실주의 소설로 억압의 시대와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조리와 화해하지 못한 작가의 고통과 고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 풍경을 그린 이 소설은 뛰어난 상징성과 눈부신 묘사, 예리한 통찰로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 됐다. 잔혹성과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작 이란에서는 금서로 지정됐으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잊힌 적이 없는 이 책은 새롭고 신비한 페르시아 문학을 선보이는 수준을 넘어 세계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다.

주인공 `나`는 필통에 그림을 그리는 무명의 화가이다. 어느 날 나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삼촌이 찾아온다. 삼촌에게 술을 대접하려고 창고로 간 나는 벽 틈새로 하나의 광경을 목격한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소녀가 강가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앉은 노인에게 메꽃을 건네는 광경이다. 잊히지 않는 소녀의 모습은 나의 영혼을 깊은 전율로 뒤흔들어 놓고, 나는 오랫동안 그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방황한다.

헛되이 소녀를 찾아 헤매던 내 눈앞에 갑자기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나의 집 앞에서. 소녀는 몽유병자처럼 내 집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곧 내 침대에서 그대로 죽어버린다. 나는 소녀의 시체를 절단해 가방에 넣고 먼 황무지로 가져다 묻는다. 소녀의 죽음 이후 삶의 깊숙한 무의미 속으로 추락해버린 나는 아편과 술의 도움을 빌려 기나긴 일생의 환각 속으로 몰입하는데….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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