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 지음 창비 펴냄, 456쪽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에 연재돼 1983년 출간된 이 작품은 구한말 제주도에서 연이어 발생한 방성칠란(1898)과 이재수란(1901)을 다룬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뿌리 깊은 학정에 시달려온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치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역작이다.
출간 당시 “명실상부하게 80년대 우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우람하게 열어놓았다”(소설가 이호철)는 평을 얻으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동명의 연극으로, 1999년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각색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은 옛 표기를 현행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장정을 바꾸어 작품이 지닌 묵직한 감동을 새롭게 전한다.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 제주도 전 도민이 봉기한 최대 민란이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의 전 과정을 당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구한말의 정치가 김윤식의 기록을 기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 측의 자료 등과 민간 취재를 더해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해낸다.
소설은 을미사변의 연좌로 김윤식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중앙 정부와 토호들의 수탈에 시달려온 제주도의 수난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작가 현기영은 거납(拒納)운동에서 시작된 민란이 민중에 의한 천주교인 박해로 이어지게 된 국내외의 복합적인 시대적 요인을 사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파헤침으로써 두 민란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럼으로써 `변방에 우짖는 새`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적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두 민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라 할 만한 성과로서 완성됐다.
그러나 `변방에 우짖는 새`에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의 복원에만 한정되지 않는 커다란 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소설 틈틈이 민란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적객 김윤식의 목소리와 비교적 민중적 입장에 가까웠던 그의 문객(門客) 나인영의 목소리가 개입하는 가운데, 이름 없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대목마다 생생하게 펼쳐지고 여기에 이 모두를 조망하는 작가적 시선이 더해짐으로써 소설은 역사를 구성하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겹겹의 진실을 각각의 역사적 주체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민란의 발단과 전개과정에서 작동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동학(動學)을 문학으로써 포착하는 데는 그 이상의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을 통해 `변방에 우짖는 새`는 중앙과 변방의 위계를 전복하고 더 나아가 제주 안의 위계들마저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교착하는 제주의 속내를 핍진하게 드러낸다”(문학평론가 최원식) 더불어 당시 제주도의 풍속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제주어의 보고라고 할 만한 풍부한 어휘들이 소설의 서사와 긴밀하게 어울려 자아내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변방에 우짖는 새`가 보여주는 수난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민중의 억센 혼을 발견하는 일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 빼어난 문학적 성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