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얼빈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은 하얼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또 중국인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은 중국에 관한 얘기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사과에 관한 얘기다. 빨간 먹음직스럽게 생긴 사과에 관한 얘기다. 나는 이 사과를 하얼빈 의대병원 앞에서 샀다. 어느 행상 아주머니였는데 아주 순진하게 생겼고 길에서 과일을 파는 일에 십 년은 족히 바쳐온 것 같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홍옥 한 알, 이도 저도 아닌 사과 한 알, 그리고 사과배 한 알을 샀다. 15위안이라고 했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괘이치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잔돈푼을 받지 않거나 적당히 바가지를 쓰고 샀을 때의 쾌감이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그때 나는 정말 과일이 먹고 싶었다. 그런 때가 있다. 못 견디게 탐스러운 과일을 입에 물고 싶을 때. 나는 그중의 한 알을 그 자리에서 먼지를 바지에 썩썩 씻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은 그만그만했다. 더구나 사과는 냉장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다. 아삭아삭 씹는 맛을 느껴가며 하나를 그런 대로 다 먹어버렸다.
나머지 두 알은 호텔로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그중에 아주 빨갛고 잘 생긴 녀석을 아무래도 무척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동안 그대로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으니 말이다. 나머지 하나도 냉장고에 넣어 두기는 했지만 있는지 없는지 생각이 안날 지경이었다.
계속해서 녀석의 존재가 머리 한 쪽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드디어 그놈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오늘은 먹어 치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놓고도 나는 낮 동안에는 거리의 경물들에 관심을 빼앗겨 가방속에 넣어둔 사과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밤이 되자 나는 문득 사과를 떠올렸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메모도 했더니 몹시 힘들었고, 뭔가 신선한 것을 먹고 싶었다. 그때 바로 사과가 생각났다. 이때 나는 이미 호텔로 돌아온 후였다. 하루종일 가방속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다 식어버린 사과를 먹어치워야 할지 꾹 참고 냉장고에 집어넣어 차갑게 만들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내 마음은 나중의 보람을 찾는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의 갈증은 하얼빈 생수로 달래기로 하고 냉장고에 그 탐스러운 사과를 집어 넣으며 내일 아침을 다시 기약했다. 그날 밤 나는 또 거리로 나가 혼자서 중국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를 만끽하며 늦게까지 거리의 하얼빈 맥주를 파는광장에 앉아 있었다.
중국은 몹시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하얼빈의 물가는 서울 뺨치게 비싸서, 도대체 이 물가를 어떻게들 감당하며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하얼빈에는 낭만이 있었다. 옛날 러시아 사람들이 개척한 도시답게 이곳에는 러시아 요리와 러시아 가수와 러시아풍 건물들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나는 조만간 하얼빈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곱게 잠들었다. 그 소설은 엉뚱하게도 괴기소설 같은 것이었고 그 때문인지 나는 밤 사이에 안 좋은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그런지 또 일찍 깨어났다. 새벽 다섯 시 반. 호텔 커튼을 열고 박명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나는 또 사과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냉장고를 열고 사과를 꺼냈다. 차가운 빨간 사과. 나는 이 탐스러운 사과를 잠깐 쳐다보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런데 입 안에 가득 퍼져야 할, 내가 기대했던 향취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
맙소사. 입을 떼고 보니 속살을 드러낸 사과는 끔찍하게 썩어 있었다. 겉은 그렇게 멀쩡한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사과는 한 겹 얇은 껍질 속에 흉칙한 본색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망스러움이란. 하지만 세상에는 이 사과 같은 것이 많음을 알기에, 나는 역겨움을 참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이 사과보다 더 한 것이 많음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