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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변두리 인생, 詩로 풀어내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8-30 05:40 게재일 2013-08-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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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는 항구다`  박형권 지음  창비 펴냄, 148쪽

2006년 사십대 중반의 늦깎이로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형권 시인의 두번째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창비)가 출간됐다.

생명력이 펄떡이는 이미지와 구수한 입담으로 민초들의 소박한 삶을 그린 첫시집 `우두커니`로 `새로운 민중서정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던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삶의 현장에서 빚어낸 진솔한 언어로 자본주의 사회의 `낮은 생태계`에서 가난한 삶을 꾸려가는 서민들의 변두리 인생을 곡진하게 그려내면서 섬세한 감성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다. “거대도시 주변부 동네와 사람살이에 대한 증언”으로서 삶의 진정성이 오롯이 녹아든 시편들이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은행나무`부분)

박형권의 시는 `비시대적`이라 할 만큼 시단의 풍토나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관념적인 언어에 기대어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길어올린 친근한 일상 언어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시인은 자신이 속한 서울의 변두리 동네, “뷰티플 자본주의”(`뷰티플 플라워를 지나가고 있다`)의 주변부 인생의 곡절들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걱정거리라도 생활에 보태 쓰는 동네”(`촌티`)에서 “인간다운 생활”(`화살나무의 과녁`)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시인은 “바들바들 버티다가 처박히”는 “고달픈 서정”일 뿐인 자신의 시가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무능”(`겨울비`)함을 자탄한다.

“동부시장 시계탑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거리, 정오, 튀김 천막 내외가 점심상을 받는데 /다붓하게 마주 앉아서 `시골밥집` 된장찌개를 놓고 흰밥을 먹는데 /된장 한 그릇에 들어가는 두개의 숟가락이 서로의 입속에 깊숙이 혀를 밀어넣듯 서로를 먹이는데 /길 위에서 먹는 밥이 달고도 달아 서로를 먹어주는 것이 달고도 달아 /아, 먹는 일 장엄하다”(`꽃을 먹다`부분)

지난날 “허무를 좀 안다고 /`살아서 뭐하겠나`와 /`에라, 대충 살자`를 퍼뜨”리며 “나팔을 불었”(`허무의 힘으로`)던 시인은 어느덧 “내 어깨에 아이 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아내가 화장품을 안 사기 시작하였다는 것을”(`장엄한 세수`)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발 딛고 선 이 삶의 누추한 풍경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쌓아올려야 함을 자각한다. “늘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창틀이 마당과 맞물린” “반지하 단칸방”을 맴도는 땅 밑의 삶을 힘겹게 이어갈 뿐이지만, 시인은 비참함을 한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미래는 송이버섯처럼 번창하리”(`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라는 희망을 안고서 삶을 짓누르는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 시인 박형권

시인은 지금 이곳, “발아래 세상이 보이기 시작”(`아빠의 내간체―실연의 힘`)할 때 비로소 저 너머 인간의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의 세상을 꿈꿀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서 씻고 밥 먹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올라 /밥벌이하러 가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고단한 삶일지라도 시인은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끝내 행복하고야 말겠다”(`장엄한 세수`)는 자못 비장한 다짐을 가슴속에 새긴다.

“절망을 끌어안을 자궁이 없”(`김자욱 씨의 여명`)는 눈물겨운 생의 이면을 확신하고 있기에, 시인은 “사랑도 증오도 아닌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을 높이 치켜들고”(`풀꽃`) “내가 나를 부르며/수없이 `깨어나라`고 외쳤던 그 막막한 어둠을 기억하며”, 오늘도 내일도 “여명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불러요 콜택시`)는다.

“능소화 한 가닥 흐드러지게 피어/창문이 보일락 말락 한 지하방에는 /방바닥보다 화장실이 높이 있어서 /서너 계단 밟고 올라가야 변기통이 있다는 거 /혹시 아나 //우라질 놈의 변기통이 고장도 잘 나 //우리 모두 배 속에 똥 모셔두고 사는 걸로 /위안하며 살자 //이렇게 꽃다운 시로 읊어가면서”(`꽃다운 시`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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