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납북화가 임군홍 작품세계·삶 재조명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9-02 00:17 게재일 2013-09-02 13면
스크랩버튼
내일~22일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서 특별전
▲ 임군홍作 `가족`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는 3일부터 22일까지 A관에서 `납북화가 임군홍 특별전`을 마련한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국내화단에서 잊혀져 있던 납북화가 서양화가 임군홍(1912~1979)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게 된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위해 1992년 8월 대백선교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 부분에 대한 육성지원, 의료 선교 및 영세교회지원, 장학금 지원 등 교육사업, 청소년 문화사업 등의 다양한 지원과 육성에 공헌해 오고 있는 (재)대백선교문화재단의 2013년 예술지원행사의 일환으로 열려 그 의미를 더한다.

서울 출신의 임군홍은 경성양화연구소 등에서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 후 1931년 조선미전에서 첫 입상을 하면서 국내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38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과 함께 만주일원의 스케치 여행은 당시로서는 이국적인 소재를 소개해 국내화단에서 또 한번 주목을 받았기도 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과 함께 납북됨으로써 그의 예술적 가치와 평가는 휴전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우리화단에서 잊혀진 `망각의 화가`로 인식돼지고 있다.

전시장에는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상과 1938년 제1회 개인전을 즈음해 제작된 유화작품들과 1940년대 만주지역 야외스케치 여행을 통해 이국적 풍경들을 화폭에 담은 작품 30여점이 선보인다. 유족들이 보관중인 유화작품들과 드로잉 작품, 유품들도 함께 전시되며 특히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소장중인 `김혜일·임군홍 2인전` 포스터(1939년 중국) 등 다양한 전시자료들과 유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임군홍은 일반교양 뿐 아니라 미술수업까지 거의 독학이다시피 한 자수성가형의 화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북화가 뿐만 아니라 근대화단의 다른 서양화가들 중 누구보다도 유작이 많이 남아 있으며 특히 그것이 단일 장소에 집중돼 보존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물, 풍경, 정물을 고루 소재 삼은 그의 작품은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냈었고 1939년 만주로 가서 수년간 지내면서는 한층 다양한 수법의 표현감각으로 만주일원의 이국적인 풍정을 많이 그렸다. 그 작품들은 서구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를 적절히 수용하려 했다. 특히 한가지 대상을 한번 만에 그리지 않았던 그는 계절적 변화에 따라 여러 위치에서 고궁을 그리곤 했다. 어려운 예술가의 길을 걸어 온 따스한 인간성을 헤아릴 수 있는 `노점`, `행상`, `행려` 등 서민들을 대상으로 어려운 현실을 담은 작품도 있다.

▲ 북경서 개인전을 연 임군홍 화가.
▲ 북경서 개인전을 연 임군홍 화가.

임군홍은 또한 서구의 다양한 양식을 수용해 표현 해 냈다. `모델`, `나부` 등에서는 당시의 누드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대담한 포즈를 잡아내고 있다. `구름`, `노인`, `모자를 쓴 남자`에서는 짧고 굵은 붓놀림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전반적으로 담담하고 안정감이 넘치고 있다. 꼼꼼한 필치를 바탕으로 수평을 겹쳐놓은 듯한 구도를 즐겨 활용한 가운데 양식을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대상에 대한 충실한 묘사가 중첩돼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1950년 6·25 전쟁 중 납북된 이후 북한에서는 문화선정성 소속으로 선전화를 그렸으며 무대 미술 및 영화 촬영소의 의상 디자인을 창작하기도 했다. 1961년까지는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지냈다. 그 후에는 함경북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1970년대 초에 조선화 기법을 새로이 익혀 조선화가로 전신했고 그간의 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대백프라자 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그동안 망각의 화가로 인식 되어 오던 월북작가 임군홍의 작품세계와 삶을 재조명 해 보고자 마려한 이번 특별전이 관람객들에게 그의 예술관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