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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

등록일 2013-09-11 02:01 게재일 2013-09-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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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 교수·임상병리학과

동양과 서양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서로간의 다름이란 누가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기에 논쟁 할 사안은 아니지만 동양과 서양을 비교해 보면 의식주 형태를 비롯하여 외모,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인생을 대하는 사고방식 등 근본적으로 큰 차이와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글로벌시대이기에 동양이 서양에 물들고 동양의 문화가 서양에 스며들며 많은 부분 혼합되고 융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서로를 비교할 때 마다 이해가 되지 않고, 신기하고, 180도 다른 관념의 체계에 놀랄 때가 많다.

동양의 그림을 보면 물체가 그려져 있는 부분과 그려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 빈 공간이 많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이 이른바 `여백의 미`이다.

이는 대상의 형체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광활한 우주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미학은 산수화뿐만 아니라 인물화에도 적용된다. 유명한 동양화가들이 그린 인물화를 보면 인물 외에는 배경에 아무것도 장식하지 않았다. 실처럼 부드러운 선만으로 한 인물의 풍모, 지고한 인격, 엄숙한 자태, 단아한 외모를 유감없이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이는 그리는 대상의 내면을 중요시하는 미학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동양의 그림은 간결과 압축의 기법을 사용하며 숨겨져 있는 것이 나타나 있는 것보다 깊고 광활한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서양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 벽면을 가득히 채운 그림들을 보면 여백의 미를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서양화에서는 밑그림에도 자세히 보면 색이 칠해져 있다. 왜냐하면 서양화에서 빈 곳이란 미완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백을 허용하고 그 여백에 작가의 내면 세계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담아내는 동양의 그림 앞에 아마도 대부분의 서양인들은“왜 이렇게 미완성 된 그림이 많은 것일까?”라며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효율과 성장을 갈구하는 서양의 경쟁 시장 시스템의 상징인 도시의 삶에서는 결코 빈 곳을 용납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답답하고 팍팍하다.

그러나 서양 문화에서도 여백의 미가 가감 없이 표현되는 유일한 분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음식의 차림에서다.

서양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정통 풀코스 요리를 먹을 때 보면 엄청나게 큰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의 량은 터무니 없이 적다. 고기 한 두 점, 치즈 한 조각에 소스를 곁들인 약간의 샐러드…. 푸짐한 한정식 상차림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여백의 미이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 주방장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요리에 혼을 담고 메시지를 담는다고 한다. 그들의 요리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소통의 도구라고 말한다. 큰 접시에 남아있는 여백은 그 요리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으로 가득히 채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결국 여백의 공간에 남겨 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깊고 넓으며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 것은 동양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큰 정치인이나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CEO 일수록 새벽 일찍 일어나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짧게는 15분, 길게는 한두 시간 정도 묵상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고 한다. 자신이 그려나가는 삶이란 예술 작품에 충분한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함이다. 여백의 넓이와 깊이가 충분히 넓고 깊을 수록 그들이 이루어 내는 성공의 결실은 알차고 풍요롭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삶의 여백 없이 답답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은 어떤가? 잠시나마 당신의 생활속에서 풍요로운 여백의 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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