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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덩어리 사회, 詩로 매섭게 질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9-13 02:01 게재일 2013-09-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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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간다`  이영광 지음 도서출판 창비 펴냄, 152쪽

지난 2011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영광(48) 시인의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창비)가 출간됐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아픈 천국`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이다.

“짐승의 비릿함과 사람의 고독, 시인됨의 긍지와 부끄러움, 사랑과 역사가 교차하는 밀도 높은 시의 몸”(함돈균, 해설)이 담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절정에 오른 시적 감각으로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매섭게 질타하며 시대의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결연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시대를 관통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섬뜩하리만큼 세밀한 묘사, 생동감 넘치는 정교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견고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총 60편의 시가 실렸으며 미당문학상 수상작 `저녁은 모든 희망을`을 비롯해 새롭게 선보이는 `유령`연작 2편이 특별히 눈에 띈다.

▲ 시인 이영광

`미당의 토착적인 서정성과 김수영의 불온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이광호) 이영광의 시는 `아픈 천국`에서 몸으로 쓰는 시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이번 시집을 “`몸의 시학`에 관한 한국문학사의 가장 전위적인 실천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해설)고 평가했듯이, 시인은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나무는 간다`) “거품 같은 몸”(`깔깔대는 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건드리면 꿈틀대는”(`정물`) 가슴 밑바닥에 고인 감정을 뽑아올려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언어로 드러낸다. 몸에서 떠오르는 시적 영감을 직관으로 잡아채는 것이 그의 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인은 “전력을 다해” 살아가듯이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원혼으로 가득 찬 무수한 죽음들을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의 씨가 마른 곳에서 오히려 희망의 싹이 돋아난다고 여기는 시인은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저녁은 모든 희망을`) 삶의 그늘진 곳에서 아렴풋한 빛의 세계를 응시하며 자기성찰의 기도 시간을 갖는다.

“인간이란 것이 되려다/짐승 탈을”(`쇠똥구리야`) 쓴 “슬픈 몸”이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하게 되는 “숱한 사랑의 말”(`세한`)이 바로 시인의 기도다. 시인은 이 기도를 역설적으로 “희망이 필요 없는 희망” “절망이 필요한 절망”(`쇠똥구리야`)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린 억울한 주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유령` 연작 2편을 새롭게 선보인다.

시인이 이 자리에서 불러내는 `유령`은 “팔뚝에 푸른 `反共`을 새기고/뿔 달린 짐승을 꿰뚫은 화살 문신을 하고”서 도대체 과거 속으로 “흘러가지 않는”(`과거는 힘이 세다`) `어제의 용사들`과 “사고든 사격이든 사기든,/깊은 사색이든”(`천안`)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천안함 사건`의 원혼들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동네로 옮겨가는데/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오히려 “세상이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위로다”라고 여기는 “투명인간”(`투명`) 같은 존재들도 유령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좀 힘없이/잘 살”(`과거는 힘이 세다`)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시인의 `유령` 연작은 계속될 터, 그가 또 어떤 모습의 유령을 불러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이영광 시인은 “사람만이 찾아낸/분노의 거주지/혼돈의 부동산/이따위 곳”(`이따위 곳`)에서 “모든 말을 다 배운 벙어리/혀 잘린 변사”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시인이여`)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의 부끄러움을 내비치며, “쥐새끼처럼/죽은 채로 살길을 찾아 헤”(`살생부`)매며 그저 “시늉만 하는”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뒷밭`) 두려운 마음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시인은 “반평생 나는 시를 카피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몸을 낮추지만 “붕어빵에 정말 붕어가 들어 있었던 건지도”(`붕어빵`) 모를 일처럼 정작 그의 시 속에는 “뒤집히”고 “녹아 없어지는”(`나무는 간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서려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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