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열림원 펴냄, 304쪽
`노란집`은 박완서 작가의 장녀인 호원숙 수필가가 엮었는데 작가가 살던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 `노란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한 편 속에 생을 옮겨다놓은 듯한 이야기가 마치 작가가 옆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여기에 더해진 글 사이사이의 일러스트들은 일상의 피로를 잔잔하게 어루만지면서 삶의 여유와 따스함을 전달해준다.
책에는 `행복하게 사는 법`,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등 산문 40여편과 `그들만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이 수록됐다.
수수하지만 인생의 깊이와 멋과 맛이 절로 느껴지는 노부부 이야기가 담긴 소설 `그들만의 사랑법`을 비롯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예쁜 오솔길` 등 산문 곳곳에서 어머니 품 같은 온화한 글들, 그 문장 하나하나를 마주대하는 것만으로 그리운 작가의 모습이 비추인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작가의 글들이 마치 유언과도 같은 진한 울림을 준다.
노년의 느긋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1장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2001~2002년 계간지 `디새집`에 소개했던 글들이다. 이밖에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며 삶에 대해 저버리지 않은 기대와 희망과 추억을 써내려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에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박완서 작가는 `노년`이라는 또 다른 한 생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면서. 작가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은 지극히 소박한데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기보다 들꽃을 관찰하면서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듯이.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즈음 들어 부쩍 마나님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그들만의 사랑법`중에서)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려고 태어났지 불행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각자 선택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제각각 다르다.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주셨다. 나이 먹어가면서 그게 눈에 보이고 실감으로 느껴지는 게 연륜이고 나잇값인가 보다.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까”(`행복하게 사는 법`중에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