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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작가` 최인호가 남기고 간 어록

등록일 2013-10-15 02:01 게재일 2013-10-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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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지난달 25일 예순여덟의 `청년작가`최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40~50대 라면 대부분이 최인호의 소설과 영화에 매료되어 젊음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중 필자가 고3 때 봤던 영화 `고래사냥`은 퍽이나 감동과 재미를 안겨주었던 불후의 명작이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 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송창식이 부른 주제곡도 유명했지만, 안성기와 이미숙의 명연기와 가수 김수철의 어리버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였다. 당시 사창가라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그 곳에서 창녀 춘자(이미숙)를 탈출시켜 자유를 찾아 떠나는 민우(안성기)의 호탕한 행동과 자유로운 영혼에서 솟아나는 맑은 울림의 소리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나에게 안겨줬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절망을 극복하며 희망을 찾아 무작정 바다로 떠나는 주인공들의 용감한 행동과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들은 호쾌함마저 전해 주었다. 잡지도 못할 줄 알면서도 고래사냥을 떠나는 1970~80년대 젊은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 `고래사냥`은 청년지식인들에겐 진취적 의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입가에서 흥얼거리던 노래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즐겨 불렀던 주제곡이 되어 버렸다. 그 외에도`바보들의 행진`과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역시 시대를 대표하던 소설들로 대중들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2008년부터 침샘부근에 발병한 암으로 투병 중이던 고인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해왔다. 암 투병을 하는 가운데도 평소 “나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겠다”는 말을 해왔던 그는 진정 1970~8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병리현상과 사회변화 속에서 왜곡되고 소외되는 개인의 삶에 주목했으며 그 와중에도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힘을 주는 글들을 남기기 위해 무척 노력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빈자리가 아쉽고 그리워지는지 모른다.

고인이 작가로서 걸어온 여정을 짧은 격언으로 응축해놓은 수상록 `문장`을 보면 불교, 유교, 기독교의 가르침이 융화된 `무욕의 진실한 삶`에 대한 철학을 읽을 수 있다. 그중`느리게 살자`라는 표현은 “느림의 미학은 자기 포기,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몇 십분이라도 삶을 깊게 성찰하며 살자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들이 늘 들어왔던 느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이는 자기 성찰을 통해 가꿔진 자신의 본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노력을 가져 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불어 자신을 `조용한 노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용한 노인,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이다. 바위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바로 그러한 조용한 바위가 되고 싶다”라는 표현을 통해 나직하면서도 무게가 넘치는 조용한 바위로 살아가고 싶은 속내를 보여줬다. 대중성과 문화성 사이에서 고뇌하며 실존문학에 앞장섰던 고인 이었지만 자기 성찰을 통해 느리지만 조용한 노인의 모습으로 말년을 정리하고픈 생각이 간절하였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에서 풍겨져 나오는 삶의 여유와 무욕이 주는 진정한 소유의 의미가 이 시대의 거장 최인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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