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권혁웅 지음 창비 펴냄, 132쪽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고 `미래파` 논쟁을 주도했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권혁웅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가 출간됐다.
시대 풍자의 묘미를 보여준 `소문들`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들이 어울려 지지고 볶는”(오연경, 해설) 삶의 현장을 조망하는 명료한 시선과 풍부한 감수성으로 일상의 다채로운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감각과 사유의 기반을 `세속의 자리`에 두고서 “일상성을 뒤집는 섬뜩한 인식과 능청스러운 해학”(김기택 시인)으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삶의 세목을 짚어내는 예민한 통찰력과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슬픔과 유머를 동반하며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미당문학상 수상작 `봄밤`을 비롯해 모두 59편의 시를 수록했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무슨 맛이었을까?/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그가 전 생애를 걸고/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봄밤이 거느린 슬하,/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이불처럼/부의봉투처럼”(`봄밤`부분)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반죽을 주무르듯 말을 부리는 솜씨와 능란한 시 작법이다. “음치가 음악치료가 되는 기적”(`주부노래교실`), “삼년째 돈을 붓는 아마곗돈 회원들”(`불가마에서 두시간`),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김밥천국에서`), “그녀가 어두육미도 아니고/내가 용두사미도 아니고”(`우동을 먹으며`), “조각난 조개의 조변석개”(`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가당치 않다고 할 때의 바로 그/얼토와 당토야말로 귀신의 영토”(`서해에서`), “저녁은 이녁의 반대말”(`몸속을 여행하는 법 2`) 등에서 보듯이 시인은 말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말을 가지고 노는 `말놀이꾼`으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일상 언어를 한자어로 재구성하여 현실을 풍자하는 기법은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권혁웅 시인은 매 시집마다 참신한 면모를 보여주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시도해왔다. 패러디, 연애시, 정치풍자시를 거쳐 최근의 일상시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탐구하며 완숙한 개성으로 시세계의 영역을 넓혀온 시인은 우리가 무심결에 놓쳐버리기 쉬운 “수많은 사람/사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우리 앞에 쓱 밀어놓는다.” 서정성과 실험성을 아우르는 발랄한 기지와 일상의 현실 속에서 포착한 소재를 형상화하는 놀라운 솜씨뿐만 아니라 빼어난 언어 감각과 상상력,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두루 갖춘 이 시인을 “명석한 시인”(신형철, 추천사)이라 부른다 해도 과찬의 말은 아닐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