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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태도·경향보다 훨씬 경험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10-25 02:01 게재일 2013-10-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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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박주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74쪽
박주택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앞선 시집 `시간의 동공`이후 6년 만이다. 박주택은 시인 자신이 경험과 고통을 시에 각인할 때 비로소 시가 불멸의 힘을 얻는다고 말한 바 있다. 시란 “불멸을 꿈꾸며 써야 날카롭게 벼리어져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꼿꼿하게 허공을 가른다” 던 시인은 이제 시를 통해 외부와 서로의 존재성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형상과 내용의 괴리가 끊임없이 훼방을 놓고 있다.

시집 뒤표지에 실린 시인의 산문에는 두 개의 글과 책 제목이 등장하는데 발표연도와 발행연도가 이상하다. `세속적인 호의와 고의적인 예감`은 평론인 듯한데 2027년 발표라고 돼 있고 `메스꺼운 유리`는 시집이라는데 2033년 발행으로 밝혀놓았다. 아직 없는 글과 책이란 건 물론이거니와 지금으로선 시인이 해당 연도에 같은 제목의 글과 책을 내놓을지도 알 수 없다. 어떤 의미로든 형식과 내용은 서로 구성할 수 없는 허구나 가상의 것인 관계적 오류로서만 존재한다.

인용된 진술을 참고해 `세속적인 호의와 고의적인 예감`이나 `메스꺼운 유리`를 일종의 형상으로 읽어볼 수 있겠다. 그랬을 때 우리는 두 제목에 이어지는 진술, 즉 “반양식적 모델을 향한 가치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자칫 무례한 현실의 형식 혹은 억압의 형식과 연결”된다는 얘기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 익어가는 생성/폐기에 관한 지형”에 대한 경고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시인이 꼬집고 비트는 형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우스갯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인의 의도일 것이므로 긴장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

산문 형식의 `시인의 말`에서 한 행을 따로 차지하고 있는 문장에 유독 눈이 간다.

“관계는 태도와 경향보다 훨씬 경험적이다”

시인은 지금 이 시집을 통해 `관계`를 정의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들추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시에 각인해야 한다는, 앞 시집의 뒤표지 글에서 선언하듯 쓴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시인의 경험이 시에 각인될 때 형식은 삽시간에 뒤틀린다. 이를테면 이웃집과의 벽은 국경으로(`국경`), 막 도살된 소는 그저 하얗게 누워 있는 물건으로(`가죽이 벗겨진 소`) 바뀌는 식이다. `덫`에서는 지구의 형식이 얼음인 셈이라고 하고 인형이 아름다운 것이나 십자가가 능력을 유지하는 것 모두가 형상의 유머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시인이 옮겨온 이들 유머는 더 이상 웃기지 않을뿐더러 정색하고 들어야 한다.

“언제나 그랬지

(…)

흐린 하늘 아래 고역을 이긴 노파들 모여 불을 쬔다, 고개를 잔뜩 움츠린 채 좌판 위로 가라앉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상점이 된 사람… 고구마와 장작으로 이루어진 사람

(…)

십자가도 타이르지 못한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에 덮여가는 것을 본다”

-`크리스마스` 부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아무런 의미를 띠지 않은 채 씌어지고, 옮겨지는” 허상의 한복판을 휘저어놓았다. 이때 시인은 형식의 허상을 혐오하는 동시에 연민했다. 시인에게는 이 지구의 삶마저도 관성화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또 하나의 지구”를 요청하는바, 이 시집에 응어리처럼 자리 잡은 것은 지독한 우울과 절망의 바닥을 치고 올라올 때 얼핏 보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구 위로 별자리 옮기네 계절은 바뀌고 바뀌어 태양과 도네 우리는 우리는 울 줄을 모르고 답할 줄도 모르네 비가 내릴 때까지 꽃이 필 때까지 날짜는 우리를 찍어내고 지구의 이쪽이 아프고 지구의 저쪽이 아퍼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우리는 날마다 전시되고 비육되네” -`도플갱어`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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