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여행길 오르면 모두 이방인”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11-01 02:01 게재일 2013-11-01 13면
스크랩버튼
`누구나 이방인` 이혜경 등 지음 창비 펴냄, 232쪽

한국문단을 이끄는 작가 여섯명의 여행, 그 특별한 기록을 한데 묶은 산문집 `누구나, 이방인`(창비)이 출간됐다.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됐던 글을 엮은 것으로 이혜경, 천운영, 손홍규, 조해진, 김미월 다섯명의 소설가와 시인 신해욱의 산문이 연이어진다. 여행기로서의 풍부한 감성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고민과 사유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깊이있는 산문을 기다려온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행길에 오르면 누구나 이방인이 된다. 여기, 여섯명의 작가들은 여행을 떠나는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낯선 땅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알래스카의 곰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운명이 우연처럼 다가와서, 또 누군가는 그저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가방을 꾸렸다. 그런 그들이 선택한 곳은 여행 애호가들의 여행지 리스트에 있을 법한 지역들이다. 알래스카, 터키, 몽골, 라오스, 카리브 해, 그리고 폴란드까지. `누구나, 이방인`은 각종 여행안내서에 소개돼 그 이름만으로 기시감을 주는 여행지에 싫증이 난 이들이나, 보다 특별한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게다가 여행기를 들려주는 작가들의 면면 또한 매력적이다. 중견 소설가 이혜경을 비롯 이미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천운영, 손홍규 소설가와 젊은 활력으로 자신들만의 작품세계를 쌓아가고 있는 조해진과 김미월, 간결한 언어 사용으로 정평이 난 신해욱 시인이 여행지에서의 정서를 오롯이 기록했다. 짧게는 몇달, 길게는 일년여의 시간 동안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산 그들은 타지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하고 새 소설의 영감을 얻어 집필을 시작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누구나, 이방인`을 읽으며 작가들의 사유의 여정에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이방인`의 첫 목적지는 알래스카. 소설가 천운영이 그곳의 정취를 전한다. 강렬한 서사와 집요하게 파고드는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천운영은 이번 산문에서 재치 있고 유머 넘치는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스타카토처럼 튀어오르는 문장들로 이어지는 여행기의 꽃은 오로라다.

손홍규와 조해진 소설가가 선보이는 여행기는 좀더 둔중한 울림을 주는데, 그들은 여행을 스스로의 내면을 더욱 깊이 바라보는 기회로 삼는다. 폴란드로 떠난 조해진은 그곳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방인의 삶을 산다. 늘 안개가 낮게 깔린다는 폴란드의 정취는 작가의 존재론적인 고민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손홍규 소설가는 여행기의 시작부터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런 그를 작은 방에서 몰아낸 건 벗을 만나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벗이란, 작품으로 접한 작가들이다.

머나먼 이국의 벗을 어렵게 만나고 돌아온 그는 이렇게 다짐하듯 읊조린다. “터키에서 돌아온 이유는 나도 누군가의 벗이 되고 싶어서였다”(153면) 누군가의 벗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외로운 고투를 할 그에게 터키에서 보낸 얼마간은 분명 오랜 시간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듯하다.

독자들을 라오스로 이끄는 건 신해욱 시인이다. 시인은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언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차오르는 두려움은 바로 소통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언어를 잃어야만 좀더 평화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신해욱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함께 낯선 말을 쓰는 거라면, 낯선 말은 종종 낯선 대로 좋다. 몇개의 단어와 보디랭귀지를 섞어 최선을 다해 뜻을 전하고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맥락을 생각한다. 길거나 짧은 여정에 대해,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가족에 대해, 헤어진 애인에 대해, 젓가락을 잡는 방법에 대해.”(210면)

세계 곳곳으로 떠난 작가들이 품고 돌아온 빛나는 추억은 `누구나, 이방인`, 이 특별한 여행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다. 갈피갈피마다 꽂혀 있는 여행지의 사진은 독자를 한달음에 오로라 앞으로, 메콩 강 위로, 고비사막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