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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 꿈꾸는 잘못된 변호사 삶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11-01 02:01 게재일 2013-11-0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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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잠`  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72쪽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과 장편소설`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통해 유연하면서도 거침없는 소설 쓰기를 선보인 최제훈이 신작 장편소설 `나비잠`(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작가가 한국일보문학상(2011)을 수상한 이후 내놓는 첫 책이며 `몰락―전래되지 않은 동화`라는 제목으로 작년 한 해 동안 `웹전문지`의 장편 연재 페이지를 뜨겁게 달군 바로 그 작품이다. 오래전부터 한 인물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의 의식을 따라가며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이야기의 재료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요섭`은 대형 로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법무법인 사해(四海)의 변호사다.

그에게는 법조계에서의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다. 윗선에 어필할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관뿐. 그는 사해에서 뒤가 구린 사건들을 도맡은 덕분에 `피 묻은 칼`을 맡겨도 좋을 팔 안쪽 사람으로서 깊은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최요섭`의 대사와 행동은 도시에 안착한 사람들의 여러 생존 방식 중 어느 한쪽을 대변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아들의 진학을 위해 뒷돈을 쓰거나 자기만 살겠다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건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먹이피라미드의 꼭대기로 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몰락―전래되지 않은 동화`라는 연재 당시의 제목과 부제목에서 얼비치는 것처럼 이 소설의 한 축에서는 불온한 판타지가 강력한 서사적 동력을 제공하고 있고, 다른 한 축에서는 냉혹한 현실의 이야기가 판타지와 공조하며 숨 가쁜 흐름을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이야기인 듯 두 이야기는 평행선을 그리지만, 현실의 수많은 재료들이 새로운 맥락을 부여받아 재등장하곤 한다.

기발한 발상과 치밀한 계산으로 곳곳에 매설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겹침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더라도 무심코 읽어내리다 보면 불현 듯 엄습하는 기시감과 함께 뒷덜미에 얹히는 짜릿함을 경험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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