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distance, 距離)란 일반적으로 두 점을 연결한 선분의 길이를 말한다. 거리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단위로는 밀리미터(mm), 센티미터(cm), 미터(m), 킬로미터(km), 인치(in), 피트(ft), 야드(yd), 마일(mile) 등이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원자의 세계로 들여다 보면 10-10m 인 옹스트롬(Å), 10-9m인 나노(nano)미터 또한 거리의 단위로 사용된다. 거리는 단순히 특정 두 물체간의 물리적 간격을 이야기 하는데 그치는 단어가 아니다. 예술과 심리학에서도 일정한 거리 유지는 큰 의미를 지니는데 이를 두고 미술에서는 `미적 거리`, 그리고 인문학에서는 `심리적 거리`라고 한다. 어떠한 예술 작품을 인식함에 있어서 자기가 바라보는 예술 작품에 대하여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이고 종합적이며 개별적인 특징에 대한 집중된 인식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예술가가 대상을 인식하고 창작하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향유하는 사람 또한 미적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 작품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는 풍요로운 미적 경험을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더 나은 문학에서의 미적 쾌감을 경험하기 위해 문학 작품과의 적절히 조정된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대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사적으로 흐르기 쉽고 대상과의 거리가 너무 멀게 되면 작품 이해의 정도가 관념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미적, 심리적 거리 조정에 실패하게 된다면 작품에 내재된 미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화 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서술자 혹은 화자와 작가 사이, 서술자와 작중 인물 사이, 서술자와 독자 사이, 작가와 독자 사이 등에서 작품의 미적 완성도에 기여하는 거리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쇼펜하우어가 63세에 쓴 인생론집 `여록과 보유`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려고 했지만,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 때문에 아파서 결국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흩어지면 매서운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여든다. 그러자 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흩어졌다. 그러다 또 모이고 흩어지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의 통증을 견딜 수 있으면서 또한 서로의 체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바로 인간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는 심리학 용어인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의 유래이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각자가 지닌 삶의 가치관과 상대방의 새로운 사고 방식이 흥미롭고 신선하기에 쉽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과도하게 친밀해져서 적절한 거리 유지에 실패하면, 원든 원치 않든 반드시 서로 간에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서워 관계를 단절하고 떨어져 홀로 지내자니,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춥고 외로워 질 수밖에 없는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고슴도치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쇼펜하우어의 이야기처럼 가시에 찔리지도 않으면서 따스한 체온도 나눌 수도 있는 `묘안(妙案)의 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신의 가족 또는 대인 관계에서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오히려 당신에게 고슴도치 가시와 같은 따가운 아픔을 주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상처받지 말고, 잠시 그와의 거리를 좀 더 멀리하자. 그러면 오히려 상대방이 당신의 사랑의 체온이 그리워서 당신에게로 적극 다가올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렇듯 묘안의 거리 유지가 가장 현명한 답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