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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같은 손이 세상 헤집고 꽃이 되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1-17 02:01 게재일 2014-01-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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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의 얼굴`  윤제림 지음  문학동네 펴냄, 120쪽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서울예술대 교수) 시인이 `그는 걸어서 온다`이후 5년 만에 찾아왔다. 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그동안 보여준 `낡거나 모자란 것`에 대한 관심, 연기론(緣起論)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타자의 얼굴과 시선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응답, 익숙한 풍경의 바깥을 향한 관조와 통찰을 더욱더 농밀하게 보여준다. 특유의 이야기성이 강한 시들 역시 만날 수 있다.

`새의 얼굴`(문학동네)은 총 67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담겼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여행에 관한 시편들이 적지 않은데, 1부에 포진한 여행지는 2부에서 4부로 흘러가면서 자연 일반과 인생의 희로애락으로, 김소월, 박목월, 오규원부터 배병우 함민복까지 실존인물에 대한 회상과 인연에 대한 소회로, 마지막 4부에서는 별주부, 토끼 부인, 이몽룡씨 부인 등 시인 특유의 상황극적 시로 이어지며 의미와 논리로 가득찬 세계를 일순간에 뛰어넘는다.

여행지에서 시인은 그의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광이나 그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정서적 감흥에 심취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만나고 마주치고 의식한 시선들, 내면성에 갇혀 있던 `나`를 자극하고 다른 시공간으로 이끌고 가는 `얼굴`들이야말로 `내`가 다 볼 수 없는 것들로 나아가게 한다.

“대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와 서너 살 사내아이

어린 남매가 나란히 앉아 똥을 눈다

먼저 일을 마친 동생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쳐든다

제 일도 못 다 본 누나가

제 일은 미뤄놓고 동생의 밑을 닦아준다

손으로,

꽃잎 같은 손으로

안개가 걷히면서 망고나무 숲이 보인다

인도의 아침이다”

-`예토(穢土)라서 꽃이 핀다` 전문

예토의 `예(穢)`는 `똥`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예토라고 한다. 똥들이 가득한 이 땅, 누나에게 똥을 눈 밑을 맡긴 채 엉덩이를 `쳐들고` 앉아 있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밑을 닦아주는 누나. 그 “꽃잎같은 손”은 예토를 헤집고 한 송이 꽃이 되어 시인의 눈앞에 피어난다.

“집으로 가는데,

큰물에 떠내려왔다가

판문점 넘어가는 북쪽의 사람들처럼

이쪽의 옷은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만세를 외치며

냅다 뛰어 달아나지 못하고 -`하구의 일몰` 전문

이 시의 주체가 `하구의 일몰`에서 본 것은 다만 풍경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약한 자들의 모습이다. 이 세계에 자신의 몫이 없는 이들의 모습이 해와 함께 서서히 진다.

“어떻게 생긴

새가

저렇게 슬피

울까

딱하고 안타깝고

궁금해서

밤새 잠을 못 이룬 어떤 편집자가

자기가 만드는 시집에는

시인의

얼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새의 얼굴`전문

`딱하고 안타깝고 궁금해서` 슬피 우는 새의 얼굴이 궁금하다. 타자의 울음을 듣고 그 얼굴을 궁금해하는 것. 타자의 울음을, 슬픔을 대면하고 응답하고자 하는 것. “윤제림의 시쓰기에서 힘없고 연약한 얼굴들, 그 무방비의 얼굴들 깊숙한 곳에서 만나는 것은 이 얼굴들의 `가늠할 수 없음`이다. 윤제림 시 특유의 위트마저도 결국 감동스러운 것은 이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느꺼운 감수성 때문이다”(이광호, 해설에서) 그리하여 시집에 실리는 시인들의 얼굴은 슬프게 우는 바로 그 새의 얼굴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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