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긴 캘리포니아는 지역마다 기온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도 온화한 편이다. 특히 필자가 휴가 중 머무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더욱 온화한 편이라서 밤에는 기온이 5~10도로 내려갈지언정 대낮기온은 20~25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겨울은 우기라서 무더운 갈수기의 여름 보다는 정원의 나무며 풀들이 더욱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여름에는 스프링클러로 물을 자주 주어도 잔디밭이 말라버리기 십상이지만, 겨울에는 땅속에 잠자던 수선화 같은 알뿌리식물들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앞뜰에 있는 3그루의 야자나무는 수 십년째 같은 모습으로 넓은 잎을 펴 보이고 있다. 현관입구를 둘러싼 동백나무들도 윗가지를 쳐주니 높이가 1m 남짓이지만, 이 집의 나이만큼이나 60~70년의 수령을 자랑할 것이다.
뒷뜰에는 수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했던 거대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있다. 노란 열매를 무수히 맺고 있는 레몬나무가 있고, 하늘 높이 치솟은 사이프러스가 있고, 5~6m의 높이로 자라난 직경 5~6cm의 대나무 형태의 갈대숲도 있다.
무화과나무는 정원사들이 멋모르고 잘라 버려 가슴이 아프다. 개옷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에 무더기로 맺힌 씨들이 바람에 날려 여기 저기 싹이 트는데 자꾸 뽑아내고 잘라내도 몰래 자라 거목이 되어 버리니 골치가 아프다.
옆집 마당에는 푸른 잔디밭가에 빨간 장미와 하얀 자작나무를 심어 놓았다. 우리나라에도 요즈음 고속도로가에 식재한 자작나무 숲들이 눈에 뜨이지만 원래 이 나무는 시베리아나 몽골 등 추운 지방에 자라는 나무이다. 불에 너무 잘 타서 요즈음은 정원수로서 기피 품종이 되기도 했지만 추운 타이가 기후대에서는 목재로서나 땔감으로서나 용도가 매우 크고, 또한 사람 몸에 매우 좋다는 차가버섯이 자란다.
어떤 집에는 일본인들이 무척 열매를 좋아한다는 비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열매는 암치료에도 효능이 있다는데 필자도 두어 개 화분에 심어 커다란 잎사귀를 감상하고 있다.
며칠 전 70대 후반의 한 노신사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은퇴 후 약용식물에 관심을 쏟고 계신다고 했다. 필자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천연 비타민과 계피가루를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건물 한쪽 정원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한 조그만 나무를 가리키며 `겨자씨나무`란다.
겨자씨나무는 성서에도 등장하는 나무로서 씨가 아주 작은데 크게 자라서 새들이 깃들곤 한다는 나무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본 한국인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이스라엘 인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수없이 찾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겨자나무가 아닌 겨자씨나무라고 불러야하는 이유는 겨자씨의 비유 때문이기도 하고 겨자나 와사비의 재료인 채소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필자가 본 것은 2m 남짓의 작은 나무인데 금강초롱 같은 노란 꽃이 피고 잎은 푸성귀와 비슷했다. 이 잎사귀 즙을 상처난 피부에 바르면 금방 낫는다는데 너무 강해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씨는 겨자씨라는 말 그대로 놀랄 만큼 아주 미세한데 꽃이 진후 조그만 초롱이 생겨 그 속에 수 많은 작은 씨들이 담겨져 있다. 이 노신사가 주는 대로 포자 몇 개를 얻어와 앞뒷뜰에 뿌려 놓았다. 씨가 너무 미세해서 흙을 덮으면 않된다고 한다. 같이 있던 은퇴한 방송국 PD라는 분도 자기도 화분에 심었더니 1년에 2m까지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싹 트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씨를 한국으로도 가져가 베란다 화분에도 심어볼 참이다. 아마 그 약성에 관해서는 생의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겠지만 한국에도 겨자씨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그리고 크게 자라날 수 있는지 보고 싶고 학생들이 겨자씨에 관한 비유를 직접 느껴보게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