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詩로 읽는 삶의 지혜와 철학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1-24 02:01 게재일 2014-01-24 13면
스크랩버튼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지음 창비 펴냄, 120쪽

“나이들어 눈 어두우니”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풀과 나무 사이에도 보이고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별` 전문

문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올곧은 `원로`로서 익숙하고 친근한 이름 석자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뚝 서 있는 신경림 시인이 신작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을 펴냈다. 시인의 열한번째 신작 시집이자 `낙타`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한평생 가난한 삶들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고졸하게 읊조리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건네는 “맑고 순수하고 단순한 시편들”(이경철`발문`)을 선보이며, 지나온 한평생을 곱씹으며 낮고 편안한 서정적 어조로 삶의 지혜와 철학을 들려준다. 올해 팔순을 맞는 시인은 연륜 속에 스며든 삶에 대한 통찰과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 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 저릿한 전율과 감동을 자아낸다. 등단 59년차에 접어든 시력(詩歷)의 무게와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집”(박성우, 추천사)이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하늘에 별이 보이니/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별` 전문)

한평생 시의 외길을 걸어온 시인은 이제 황혼의 고갯마루에 이르러 “지금도 꿈속에서 찾아가는, 어쩌다 그리워서 찾아가는”(`나의 마흔, 봄`) 지난날을 돌이키며 빛바랜 추억의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리운 얼굴들을 현재의 삶 속에 되살려낸다.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집에서 시장까지의 짧은 길만 오가며 사셨지만 “아름다운 것,/신기한 것 지천으로 보았을” 어머니(`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할” 산동네에서 살다 돌아가셨지만 시인의 마음속에는 그곳에서 “지금도 살고 계신” 아버지와 “아들도 몰라보고 어데서 온 누구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쌓”던 “망령 난” 할머니(`안양시 비산동 498의 43`), 그리고 “부엌이 따로 없는” 무허가촌 사글셋방에서의 가난한 삶 속에서 일찍이 사별한 아내. 그들은 이제 모두 떠나고 “세상은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꿈인 듯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아득한 그리움에 젖는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돌아다보면 지나온 길이 그립고 아름답게 빛난다

▲ 신경림 시인

어머니와 달리 “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늘 떠돌았던 시인은 낯익고 익숙한 것들 속에서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역전 사진관집 이층`)을 찾듯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찾으려고 하루하루 “활기차게” 살아간다. “아주 먼 데./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그 먼 데까지 가자고” 멀리 떠나기도 하지만 종내는 “사람 사는 곳/어디인들 크게 다르”지 않고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웅다웅 싸우면서”(`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살아가는 모습은 한결같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별들이 쌔근쌔근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초원의 적막 속에서 문득 “세상의 소음”(`초원`)이 그리워진 시인은 “너무 오래 혼자”서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을/터벅터벅 걸어서/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이쯤에서 돌아”(`이쯤에서`)가고자 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세월은 가고 시인은 나이가 들었다. 시인은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다시 느티나무가`)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을 두려워 않고 자연을 넘보면서 뿌린 오만의 씨앗”(`원 달러`)으로 인한 재앙과 “매몰찬 둑에 뎅겅 허리를 잘리기도 하는”(`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강을 바라보면서 마구잡이 환경 파괴에 비판의 시선을 내쏘기도 한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 일컬었듯이 신경림 시인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민초들과 더불어 저잣거리에 섞여 살면서 하찮은 존재들의 슬픔과 한, 그들의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민중적 서정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화려한 것들과 찬란한 것들”(`섬`)의 볕바른 중심에 서 있기보다는 “늘 음지에 서”(`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서, “세상에서 버려져 살아온 사람들”(`빨간 풍선`)과 “꽃 같은 생애와는 무관할 것 같은 민중의 헐거운 삶”(박성우, 추천사)을 끌어안으며 “언 손 굽은 등 두루두루 어르면서”(`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집권자들의 횡포에 삶의 뿌리를 잃”은 “가난하고 힘없는”(`인생은 나병환자와 같은 것이니`) 외로운 존재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언제나 더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