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가 고난의 1월을 넘어, 2월로 진입했다. `아직`과 `벌써` 중에서 어떤 감정일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아마 학생들은 `벌써`라는 반응이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의무교육 기관들과 고등학교들이 이 번 주에 개학을 하니까. 잠시 숨을 고르던 학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생동감으로 넘칠 것이다. 가지들마다 겨울을 이겨낸 꽃봉오리로 가득하다. 풍성한 봄 잔치가 기대된다. 학교에서 2월은 이어달리기에서 바통 터치와 같은 달이다. 졸업과 입학, 그리고 진급! 계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통 터치다. 아무리 앞 주자가 잘 뛰었다 하더라도 바통 터치에서 실수를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물론 다시 바통을 주워서 열심히 뛰면 된다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학생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 모두 바통 터치를 잘해 더 신명나게 2월을 질주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니 이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겨울이라는 준비기가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는 치유의 기능은 물론 나무를 성장 성숙시키고, 나무의 내면의 힘을 키워준다. 그 힘으로 나무는 가지마다 희망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겨울이면 더 지친다. 국영수 보충수업과 학원, 그리고 과외까지. 지난 학년을 반성하고, 신학기를 스스로 준비할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하는데…. 치유는 커녕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만 주고, 의미 없는 문제를 푸는데 진을 다 빼놓았으니 우리 학생들에겐 봄의 움(맹아·萌芽)이 있을 리 없다. 진정한 학교의 봄은 언제 올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는 시들어 죽어가는 나무들처럼 꽃 봉우리조차 맺어보지도 못한 채 뿌리부터 죽어가는 학생들이 많다. 경상북도에서 학교폭력,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의 수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6천232명이며, 매년 2천200명 이상 학업을 중단(2009년 11월25일, 연합뉴스)하고 있다고 하니 지금이야 그 숫자가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교육당국에서는 이들 학생들을 위해 `Wee 클래스`, `Wee 센터`, `Wee 스쿨` 등에서 나름 체계적인 상담,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학업 중단 학생들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를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근원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 교육계는 사고를 수습하는 데에만도 정신이 없다. 또 새 정부에 맞는 새로운 교육 공적을 남겨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낯선 교육 정책 개발에만 올인하고 있다. 신학기에도 `자유학기제`라는 새로운 교육 정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미 사어(死語)가 `집중 이수제`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과연 `자유학기제`가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이미 이 나라에서 죽은 말이 된 이상 필자의 답은 강한 부정이다. 그리고 어차피 한번은 불어야할 바람이라면, 그냥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아니면 정말 위기에 빠진 공교육을 구하고, 더 나아가 시들어가는 우리 학생들을 구하는 구원의 교육 정책이 됐으면 좋겠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초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교육기본법 제8조 2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헌법 제31조 3항을 통해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혹 의무교육에서 소외된 초·중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있는가. 여기서 문제. 무상교육 대상자이지만 대학생보다 더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학교(국제중학교는 제외)를 다녀야만 하는 초·중학생들이 이 나라에는 있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