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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과 순수 향한 길고 깊은 앓이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2-07 02:01 게재일 2014-02-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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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뼈대`  곽효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72쪽
곽효환 시인의 새 시집 `슬픔의 뼈대`(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시인은 앞서 출간한 두 시집 `인디오 여인`과 `지도에 없는 집`을 통해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모든 실제적 욕망들을 차근차근 비워내며 처음의 포용력만을 남기는 미학을 추구해왔다. 곽효환은 삶의 신산한 풍경에 가려진 순수에게 손 내밀고 격변의 틈에서 신음하는 근원을 부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인이란 구원자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가깝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개발 논리, 갈등만 쌓여가는 사회, 자본에 눈먼 욕망들 앞에서 수없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시인은 “남들보다 빨리 움츠러들고, 남들보다 소심하게 반응지만 대신 먼저 아프고 오래 앓고 마지막까지 질문한다”고 고백한다. 이번 시집의 예순여섯 시편들은 시인이 그렇게 주저하고 망설이며 다가간 고통의 중심에 서 있다.

곽효환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응시하는 시선과 자주 마주친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포진해 있는 비합리를 바라보는 그의 동공은 매번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천안함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서쪽 바다`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물기둥`(`늦게 핀 꽃들의 저녁`)이나 종로 일대의 재개발 풍경(`피맛길을 보내다`) 앞에서 시인이 체험하고 있는 것은 짙은 무기력이다. 시인의 번뇌는 `도심의 저녁 식사`에서 좀더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대결할 상대는 `창밖 하늘 아득한 곳까지 닿아 있는 타워크레인`처럼 위압적이다. 그에 비해 시인은 가장 낮은 곳, 텅 빈 식당에 홀로 앉아 있는 나약한 사무원일 뿐이다. 시인은 소리 없이 반복해 외친다,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를 떠올린다면 비약일까. 그러나 곽효환이 `병상일기`에서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라고, 윤동주의 `병원`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한탄한 것을 그저 가볍게 보아 넘길 독자는 없을 것이다.

“저물녘 텅 빈 식당 한켠에 구겨져 앉은 그림자 하나

삼켜지지 않는 입안 가득한 밥을 씹는다

홀로 마주한 밥상의 서걱거리는 밥알들

씹다 만 깍두기처럼 겉도는 말들

떠도는 말들과 부유하는 진실을 삼키는

여름날, 목메는 도심의 저녁 식사”-`도심의 저녁 식사`부분

시인으로 하여금 이토록 아픈 현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낙관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낙관의 근거는 시인이 자주 호출하는 북방의 곳곳에 새겨져 있다. 자연 지리상의 북방은 사시사철 폭설과 한파를 견뎌야 하는 땅인가 하면 한없이 메마르고 거친 고통의 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은 척박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의 터전이며 고달프고 벅찬 이야기가 두텁게 쌓여온 곳, 세상살이의 따스한 인간미가 살아 있는 땅, 사랑의 궁극이 숨 쉬는 장소이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시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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