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는 섬 이름이면서 시, 소설, 연극, 영화, 대중가요 등 수많은 예술 장르의 주제이기도 하다. 옛 제주도 사람들은 이어도를 어부들이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믿고 있었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었다가 처음 보는 작은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무릉도원이었다.” 이어도는 이러한 설명과 함께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미지의 이상향이었다.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남자들은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고, 여자들은 근해에서 미역 등을 따면서 생계를 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이 불고 파도가 세니 어선들이 난파되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이 제주여인들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서 전설속의 이어도를 생각한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그 이상향인 이어도에서 잘 살겠거니 생각하며 눈물 속에 먼 바다를 보며 아이들을 키우고 물질하며 일상을 이어갔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남서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이어도 혹은 파랑도로 불리는 섬이 있다. 이 섬의 영어명은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이다. 약 2㎢ 면적의 이 수중암초는 최정상이 해수면에서 4.6m 잠겨 있어 10m 이상 파고의 파도가 칠 때를 제외하면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설상의 이어도와의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진도 인근 해역 맹골수도에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승객들을 태운 배가 전복하여 많은 이들이 죽고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금지옥엽 키우던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님들의 기막힌 심정을 다 느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살아남은 그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구조차 모여든 잠수부, 자원봉사자, 관련 공무원들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원통한 죽음이었다. 이것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 못한 선장 및 선원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우리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필자도 여러 차례 울고 있었다. 탈출할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급하게 기울어지고 바닷물이 차들어 오는 선실 안에서 그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무나 가엾고 기가 막힌다. 부모님들의 `내 아들아` `내 딸아` 부르짖음이, 그 절규가 내내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많았다.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종전 후 귀국동포들을 실은 일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의 폭침, 그리고 6·25전쟁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갔었다. 이후 나라여건이 훨씬 나아졌음에도 여객선 침몰, 수학여행버스 사고, 지하철 화재, 리조트강당 붕괴, 그리고 이번 화객선 침몰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이러한 안전사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 다짐 다짐들을 하지만, 반복되는 사고들, 그것도 인재로 불리는 대형사고들에 국민 모두가 자책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아리랑`을 즐겨 부른다. 그 고난의 아리랑 고개들을 넘어서며 우리 민족은 끈질기게 살아 왔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힘없고 못살 때의 설움속의 고난의 고개가 아니라, 할 만한데도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이 사회의 부실이 주는 고난의 고개이다. 우리 한국인들, 얼마나 많은 고난의 고개를 더 넘어야 하는 것인가?
맹골수도에서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많은 이들,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간 이 학생들, 온 국민의 기원 속에 고통 없는 그곳 `하늘나라`에서 모두 다 안식하기를 빌 뿐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매사에 더욱 충실하고 조심하도록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