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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슬픔(慘慽)

등록일 2014-05-02 02:01 게재일 2014-05-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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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

자식으로 만나고, 알고 사랑했으므로 생이별은 더욱 슬픈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자식을 앞세운 슬픔을 참척(慘慽)이라 했으며 참척의 고통을 겪은 부모의 가슴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먼지가 끼지 않는다. 진도 앞바다의 참사가 참척의 아픔이다.

수학여행에 나섰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인터랙트 학생 등 476명이 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도 살려내지 못했으며 175번째 생존자를 찾는 노력이 이어졌으나 기적은 우리 곁을 비켜가고 있다.

침몰에서 숨진 학생들이 갇혀있는 선실까지 들어가는데 꼬박 나흘이 걸렸다. 골든타임을 다 놓치고 배 이름처럼 `세월`만 보낸 이유는 `초등대처 미흡`이다. 정부는 사고 때마다 사고대응 및 재난구조 시스템을 개선 할 것을 약속했었지만 이번 참사현장에서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두고 외신들이 먼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간 세월호의 선장을 악마로 불렀다. 불투명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한국의 기업문화(미국 포브스)가 참사의 원인이며 기술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말이 외신에서 나올만하다.

지난 2월 경주시 양남면 리조트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10명의 대학생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지는 등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는 나라이니 변명조차 할 수 없다. 경제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거듭된 참사는 `고의`에 가깝다. 지금 아파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삭이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관리도 국민도 또 잊고 말 것이다.

천안함에 탄 46명의 해군병사들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생목숨을 잃은 참사도, 연평도를 지키던 해병이 북에서 날아온 포탄에 목숨을 잃은 일도 참척의 아픔이다.

12살 미만 어린이가 안전사고로 숨지는 수가 326명(2012년), 10만명당 4.3명이다. 2.5명~2.6명인 영국 독일에 비해 엄청난 차이가 난다. 국가대표를 지낸 어느 농구선수 어머니도 참사로 자녀를 잃자 국가에서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가버렸다.

세월호의 참사는 과연 국가가 우리아이들,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가 하는 강한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지난 50년간 조국을 떠난 한국인 중 10만명당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홍콩 25명, 미국인 28명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1680명이다. 이 숫자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사고 직후 SNS엔 영국의 군수송선 `버큰헤이드 호`정신을 기억하자는 얘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항해 중 재난을 만나면 영국인들은 선원이나 승객들은 조용하고도 속삭이는 듯 `버큰헤이드 호`를 생각하라는 것이 영국인의 전통이자 긍지가 됐다는 것.

이야기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가 장병들과 가족들을 태우고 항해도중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해상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사고 시각은 새벽 2시, 수송선이 허리가 끊겨 침몰되는 순간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장병들을 갑판위에 집합 명령을 내리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사이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이 3척의 구명정에 태워 뭍으로 대피시켰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죽었다. 떠나는 구명정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 470명의 군인들은 물에 잠겨 거의 살아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여자와 아이들이 먼저”라는 말이 이때부터 나왔다.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려져 있는 신발들/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유홍준 시 `상가에 모인 구두들`이다. 서로 다른 구두의 표정에서 인생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산사람의 구두는 뒤엉키지만 망자의 구두는 그날부터 평온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아파트에서의 죽음도 참혹하다.

재앙은 경고를 던진다. 짙은 안개가 출항을 막았는데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대재앙이 우리에게 던진 강폭의 시그널을 대수롭잖게 흘려보낸 대한민국의 시스템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 언론은 재발 방지책을 쏟아낸다. 재발 방지책은 국민들이 매번 듣고 보고 겪는 후진국 형 재난 대응시스템이어서 지칠 대로 지쳤다. 17살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참척의 슬픔이 없는 나라, 불행이 멈추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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