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금융의 양적완화다. 쉽게 얘기하면 국채를 매입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등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 저성장구조에서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베켓효과(Becket Effect)라는 것이 있다. 13세기 들어서야 유럽에서는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된다. 왕들은 제멋대로 화폐를 과도하게 만들어서 나라의 부채를 줄이고 봉건 영주들의 힘을 약화시켜 나갔다. 영주들은 대부분 화폐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과도하게 화폐를 만들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함으로써 영주들의 실질자산 가치를 떨어뜨린 현상을 고전적 의미의 베켓효과라고 부른다.
독일에는 깨어난 시민의식의 상징인 현대판 베켓효과라는 것도 있다. 유로화가 등장하고 유럽중앙은행이 탄생하면서 지금은 독일연방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독일연방은행을 두고 베켓효과로 무장돼 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누구라도 일단 독일연방은행에서 근무하게 되면 은행의 독립성을 위해 그 자세가 자연스럽게 베이는 현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자세는 물론 국민 앞에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외부의 압력도 단호하게 차단하겠다는 독일연방은행의 독립성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유수의 중앙은행관계자들은 독일연방은행의 독립성을 벤치마킹하려고 줄지어 독일을 찾곤 했다.
선거 때만 되면 여당정치인들은 시중에 돈을 풀어 반짝경기를 부양해 유권자의 민심을 얻으려고 했다. 그런 유혹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독일국립은행이 마구잡이로 화폐를 발행해 일어난 초 인플레이션으로 평생의 부가 휴지 조각으로 변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독일인들이 독일연방은행에 가졌던 애정은 그야말로 각별한 것이었다.
어떤 정치권력도 함부로 독일연방은행에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독일 국민들은 항상 예의주시했다. 시민들은 독일연방은행에게 시중에 돈을 풀자는 줄기찬 러브콜을 던진 정부를 용서치 않았다. 언론은 그런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러한 정부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곤 했다. 필자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 풍자의 핵심 장면은 한 손엔 정부가 독일연방은행을, 다른 한 손엔 독일 시민들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독일연방은행은 총리나 재무부장관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이 깨어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베켓효과는 결국 깨어 있는 독일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연방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계승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범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성이 그것이다. ECB는 유로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회원국의 통화주권을 인수, 유럽공동의 통화금융정책을 지휘하는 유로 경제권의 중앙은행이다. 큰 틀에서 보면 환율안정과 외채 감소 등 독일연방은행의 엄격한 통화안전 노선을 취하고 있다.
경기상황에 따라 시중에 통화를 풀던 혹은 거둬들이던 그것은 오직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독일연방은행의 역할이지 정부가 섣불리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베켓효과의 핵심이었고, 베켓효과로 인한 독일연방은행의 꼿꼿함 뒤에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최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민선6기 출범을 맞아 취임식 대신 독도를 찾아 더 큰 경북 꿈의 완성을 위한 새 출발의 의지를 대내외에 선언했다. 경북의 각 지자체장들도 시민과 소통하며 시정과 군정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각 부처가 오직 시민을 위해 소신껏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한국판 베켓효과가 작동하는 민선6기의 출범이 됐으면 한다. 그것도 추상같은 시민의식이 함께 할 때 가능한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