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한가위에 들을 법한 이 노래는 브라질 축구의 성지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울려 퍼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자 독일축구팬들이 `타게 비 디제(Tage wie diese·이처럼 오늘 같은 날)`라는 노래를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준결승전에서 융단폭격 같은 독일의 공격에 브라질이 무너지자 브라질축구팬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같은 눈물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희비의 눈물이었다. 실망한 브라질 일부지역에서는 난동과 소요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월드컵축구가 단순한 지구촌의 스포츠축제로만 여길 수 없음을 증명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국가대표선수들의 유니폼만 보더라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니폼은 한마디로 팀 정신을 함축한다.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는 물론 국민정서까지 포함해 그 나라를 상징한다. 사라졌던 영광과 권위도 각인시킨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색깔과 디자인에다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면서 국기의 문양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더욱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승리한 독일의 유니폼은 32개 팀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끌어낸 유니폼으로 평가하고 있다.
흰색 바탕에 승리의 상징인 붉은색의 V자가 가슴에 새겨져 있다. V자 안에는 별 3개. 월드컵 3회 우승을 상징하는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별 하나가 더 추가될 전망이다. 유니폼 소매 자락의 검은색과 붉은색은 독일 삼색기(흑·적·황)인 국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삼색기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처음 국기로 지정됐으며 독일의 단결과 자유를 상징한다. 물론 이 같은 자유는 독일이라는 국가의 자유 뿐 아니라 독일 국민의 개인적 자유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독일과 결승전을 치른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권위를 유지했으며 흰색과 푸른색의 스트라이프로 강한 이미지를 풍긴 유니폼이었다.
이 같은 유니폼과 정신으로 무장한 국가대표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격돌하는 것이 월드컵 축구다. 여기서의 승패가 과연 단순한 스포츠만의 승패가 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함축하면서 국가와 사회적으로 뻗어가는 또 다른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독일 통일의 신호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실상 통일을 앞둔 당시 서독은 지금처럼 아르헨티나를 꺾고 통산 3번째 우승의 과업을 달성했다. 감격했던 우승의 기쁨은 같은 해 10월3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그보다 앞선 1974년 서독 월드컵 때는 동독과 서독이 각각 본선에 진출했고 예선전에서는 같은 조에 편성되는 운명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독일사회는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더 절감했던 것이다.
독일 언론들도 만약 독일대표팀이 이번에 월드컵우승컵을 거머쥔다면 남아있는 동서 갈등 해소는 물론 이민자 화합 등 독일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예상대로 독일은 이 시기에 맞춰 축구로 세계를 평정했고, 독일 전체가 일심동체가 됐다.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독일 사회에서는 출신에 대한 앙금이 잔재해 있다. 서독사람들이 일컫는 오씨(동독출신임을 살짝 비꼬는 말)와 동독사람이 일컫는 베씨(서독출신임을 살짝 비꼬는 말)처럼 감정적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독일은 전체인구의 약 20%가 이민자로 구성돼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외국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인종에 대한 혐오가 전연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신형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대표팀은 터키, 가나, 튀니지 등 이민가정출신도 포함됐으며 모두 사회적으로 하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아직 분단국이면서도 본격적인 다문화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독일 월드컵 우승이 던지는 메시지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