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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교육

등록일 2014-07-29 02:01 게재일 2014-07-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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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역시 비극으로 끝났다. 아직 진실이 규명 된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유병언 회장이 사체로 발견되었다. 한 사람의 비극적인 최후를 들으면서 슬퍼하기는커녕 죽음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사인(死因)에 대한 철저한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 필자처럼 유 회장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아직 슬픔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모설부터 구원설까지 마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오영진)와 같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과연 유 회장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된다고 본 것일까? 아니면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일까? 분명한 건 그의 죽음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만 있다. 유 회장은 살아서는 수많은 꽃다운 어린 목숨을 앗아가더니, 죽어서도 많은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고 가고 있다. 과연 그는 그의 추종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구원 받았을까, 만약 그의 죄가 용서된다면 신은 죽은 것이다, 아니 신은 절대 없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이대로는 안된다. 비극이 더 한 비극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닌 필자가 뭔가를 말한다는 것이 죄스럽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연일되는 집회와 계속되는 자살, 그리고 더 많은 제3의 희생자들!

절대 그냥 덮자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용서 하자는 것도 아니다. 비극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대승적인 용기를 내야만 한다.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거듭 말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큰 용기를 내야만 지금의 이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그런데 비극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다 더 한 비극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학이다. 지금 일선 학교는 서류상으로는 방학이다. 이론상으로는 우리 학생들은 방학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적 배경과 행복한 가정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익하고 즐거운 희극을 찍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의 방학은 어떤가?

어른들은 지난 4월을 벌써 잊었다. 그 때 잠시 우리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학생이 아닌 자녀로 보았다.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다시 더 독한 부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방학을 더 독하게 이용하고 있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연습을 독하게 시키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의 독한 마음으로 독한 보충수업과 더 독한 학원과 과외로 자녀가 아닌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 더 독하게 다른 이들을 밟고 일어서라고.

모든 현상에는 예외가 있듯이 필자는 우리 아이들을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지난 16일 전라도 신안군 증도 앞 바다에서는 환경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 주제는 `해양 쓰레기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자!`, 산지여정 프로그램 중 하나인 친환경봉사활동으로 아이들은 해양 정화활동을 했다.

남들 다 가는 놀이동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신이 났다.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조명도 없었지만, 학생들은 자신이 주운 쓰레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학생들의 손길이 닿자마자 쓰레기들은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거듭 태어났다. 재탄생을 축하하는 공연도 열렸다. 폐스티로폼은 드럼으로, 폐플라스틱 병은 마라카스로 변신하여 아이들과 훌륭한 화음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만드는 증도 해변 환경 페스티벌은 분명 비극에 빠진 이 사회를 희극으로 바꾸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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