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는 1988년 7·7선언을 통해 북방외교와 공산권수교를 추진했다. 88서울올림픽에는 공산권국가도 참가했고, 89년 2월 헝가리, 11월 폴란드, 12월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했다. 90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와 수교했고, 같은 해 9월 소련(이후 러시아로 변경)과도 수교했다. 91년 9월에는 마침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벌써 북방외교를 추진한 지 25년이나 되었고, 러시아도 이제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팀`이 포항을 찾았고, 21일에는 청송을 방문했다. 23일까지`고국산천순례`를 한 후 23일 동해에서 행사를 치르고, 24일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감한다. 자동차 대장정팀은 한반도통일을 기원하며 지난 7월7일 모스크바를 출발해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장장 1만 5천 ㎞ 종단을 시도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시베리아의 수도-노보시비르스크, 연해주의 주도-블라디보스토크를 통과해 북-러 국경과 가까운 하산 자치군에 있는 크라스키노 마을에 도착했다. 예전에 발해의 영토였던 곳인 크라스키노 마을에서 북한에 입국, 다시 자동차 랠리를 진행했다.
북방정책 추진 25년이 되는 해에 맞춰 이뤄진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은 큰 의미가 있다. `제2의 북방외교사`를 써 나가는데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상징적 7.7이벤트`임과 동시에, 작고 구체적인 일에서부터 시작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내자는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담긴 정신을 구현하는 일도 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같은 민족인 고려인이야말로 남과 북의 가교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아울러 러시아와 대한민국, 블라디보스토크와 포항, 하산 자치군과 포항, 블라디보스토크와 동해 등이 교류하는데 고려인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팀`의 정신을 살리는 의미에서 이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 코스로 관광 상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모스크바~타슈켄트~알마티~노보시비르스크~블라디보스토크~하산 자치군(크라스키노) 사이사이에다 다른 도시들도 넣어 시작해보자. 역순(逆順)으로도 해보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러 친선 차원에서 그리고 통일의 분위기조성 차원에서 `통과 가능한 지역`부터 코스를 개발해 보자. 지자체에서도 해외자매우호교류도시와의 국제협력 증진과 관광산업의 활성화 차원에서 시도해 보자. 그래서 그 코스에 있는 도시들과의 교류를 더 강화해 나가면 좋겠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우리민족의 자원인 고려인을 `현지 홍보대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나진·하산 물류사업과 연해주 대규모 농업 프로젝트를 위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훈춘~하산(자루비노항)~영일만항으로 연결되는 항로활성화를 위해서도 고려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 북·중·러 3국에 인접한 물류거점도시인 훈춘에서 금영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공사 총경리로 활동하는 김송봉과 같은 인물이 고려인 중에도 있을 것이다.
이제 한·러 역사의 한 장을 더듬어 본다. 스탈린의 정치적 결정으로 단행된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스타하노프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그들은 노동생산성과 생산량을 증대시키려는 그 운동에 협력함으로써 살아남았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號)는 1905년 5월 울릉도 인근해역에서 일본전함과 교전 중 선체가 파손돼 침몰했고, 수군들은 울릉읍 저동항으로 피신했다. 러시아인들은 러·일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침몰 110년이 되는 내년 5월에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추모비`를 울릉도에 건립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추모비 건립행사에 자국의 해군 사관생도들을 초대한다. 우리는 고려인 3세들을 초대하면 어떨까? 아픈 과거사를 기억하며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