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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앞두고 생각해 보는 우리말

등록일 2014-10-06 02:01 게재일 2014-10-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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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서 봉화군 봉성면장

필자는 세계경영을 꿈꾸다 지금은 남의 손에 넘어간 대우자동차의 `누비라`를 아직도 운전하고 있다. 자동차 번호가 `대구 27누`로 시작 되는데 아이들은 어릴 때 자동차의 이름이 `누비라`여서 당연히 `누`로 시작 되는 줄 알고 있었다.

남들 보기에는 `로시난테`같지만 나에겐 적토마와 다름없는 이 차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끔 고장이 날 때가 있다.

긴급출동 서비스에 전화를 걸면 위치와 자동차 상태를 물어서 시동이 안 걸린다고 했더니 “배터리가 방전되신 것 같습니다”고 한다. 방전됐으면 됐지 방전되신 것은 무슨 말인가?

옛날 새색시가 시아버지 머리에 검불(마른풀)이 붙은 것을 보고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습니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참으로 듣기 거북하다. 이런 경우는 식당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데“5만원되시겠습니다”, “자판기는 고장이세요”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단순하게 어느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객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어법에 어긋나는 높임말이 너무 많다. 어디 그뿐인가. 먹방, 생선, 생파 등 뜻 모를 줄임말과 멘붕, 관피아, 로망, 꿀벅지, 떡 실신…. 국적을 알 수 없는 저속하고 희한한 말들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어느 때나 비속어는 있겠지만 요즘 우리말의 혼란은 참으로 심각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방송 출연자들의 말이라 하겠다. 속되고 요란한 말장난으로 시청자의 관심만 끌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 조금 유식하다는 축에서는 “모럴 헤저드가 말이 아니야”, “대화가 너무 드라이해”, “트렌드가 지났어” 등…. 제 나라 말을 이처럼 업신여기고 아무렇게 쓰는데 누가 우리말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언어와 민족은 운명을 같이한다.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기관인 사역원에는 거란, 여진 말을 전공하는 교육과정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지구상에 거란, 여진 말을 교육하는 기관이 있는가. 거란, 여진의 말은 잊힌 말이 됐다. 말이 소멸되면 나라도 자취를 감추는 것이 역사의 진리다. 제 나라말은 남들이 지켜주지 않을뿐더러 지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말과 글을 쓸 수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있다. 그래서 선열들은 조선어학회를 조직해 죽음으로써 우리말과 글을 지켰는데 일제는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라는 취지로 유죄 판결을 내려 탄압·투옥했다.

지구상에는 제 나라 말이 없는 민족도 많으며 혹 제 나라 말이 있다고 해도 제 나라 문자가 없는 민족 또한 많다. 제 나라 말을 제 나라 문자로 쓰는 국가는 진정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유럽, 미주는 물론이요 아프리카, 우리나라 주변에도 몽골, 베트남, 터키 등 알파벳을 빌려 제 나라말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한글은 2009년, 2012년 세계문자올림픽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언어대학의 세계 언어 평가에서 으뜸을 차지했다. 또한, 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세계 94개국 977개 곳(대학포함)에서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우리말과 글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렇듯 세계 각 곳에서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 것을 귀한 줄 모른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가!

우리말은 민족의 얼이요 생명이다. 아끼고 곱게 다듬어 우리 스스로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의 엄숙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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