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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등록일 2014-12-05 02:01 게재일 2014-12-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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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실험이 이뤄졌다. 여섯 명의 학생이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두 팀으로 나뉘어 농구공을 패스하는 데, 실험 참가자들은 흰 셔츠를 입은 팀이 농구공을 패스한 횟수를 세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물론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답을 맞혔다. 그러나 정작 실험자들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두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안 검정 고릴라가 등장해 그들 한 가운데서 가슴을 쿵쿵 치고는 사라졌는 데, 그 고릴라를 보았는가가 실험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참가자의 절반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패스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커다란 고릴라를 못 본 것이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크리슨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행한, 너무나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이다. 이 실험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어떤 한 가지에 집착해있으면 그 외의 것은 바로 눈앞에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인생살이도 그렇다. 눈을 돌릴 줄 모르고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거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눈앞에 보이는 걱정거리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좀 더 폭 넓게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내년부터 담뱃값이 2천500원에서 4천500원으로 훌쩍 오르는 것을 계기로 금연의지를 다지는 끽연가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 대만 피고 진짜 끊는다”라고 다짐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담배를 입에 물며 금연의 어려움을 절감하는 흡연자들이 의외로 많다. 의지 부족이라고 자책하는 경우도 있는 데, 의지만의 문제로 돌릴 필요는 없다. 담배 속에는 니코틴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니코틴의 중독성은 헤로인, 코카인 등 마약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흔히 초조, 불안, 손 떨림 등 금단증상도 바로 니코틴 때문에 발생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아 피우는 사람은 니코틴 의존도가 높은 편인 데, 이런 사람은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기가 어렵다. 이럴 때 금연 보조제를 사용하면 금단증상을 줄여줘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학창 시절, 기계체조와 격투기 등 스포츠를 즐겼던 나는 수 년전 지인들과 등산을 갔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숨이 가빠오는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금연을 결심했다. 담배가 인체에서 산소교환기 역할을 하는 폐를 얼마나 빨리 망가뜨리는 지 깊이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굳은 결심으로 금연한 지 5년여가 흘렀다. 언제나 달고 다니던 기침·가래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웬만한 산을 오를 때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나는 요즘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말하는 것 처럼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담배를 끊은 것입니다.”

특히 금연에 성공하고 나니 가족들이 가장 기뻐해주었다. 담배는 피우는 당사자는 물론 간접흡연을 통해 아내와 아이들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연가의 근거없는 집착, 거기서 비롯되는 사회적 차별은 적지않다. 웬만한 고급식당에서는 손님대접 받기 어렵고, 관공서나 공공건물에서는 사람대접도 받기 어렵다. 길거리나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워도 눈총 받거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추운 겨울,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찬 바람부는 회사앞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 동지들의 모습은 측은하기만 하다. 애연가들은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상종도 못할 사람`이라며 혀를 찬다. 부러운 걸 티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일게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담배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기호품이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우리 삶에 다가오는 `치명적인 고릴라`를 직시하고, 금연대열에 동참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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