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일컫는 업(業)이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또는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업을 신업(身業), 말로 짓는 업을 구업(口業), 생각으로 짓는 업을 의업(意業)이라 하여 3업(三業)이라고 한다. 선도 악도 아닌 무기업(無起業)은 과보를 이끄는 힘이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악의 업을 쌓으면 그것이 업인(業因)이 되어 생생하게 업과를 받는 것으로 돼 있다.
정치권에서 구업이 자주 요동치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정치행위를 가능케 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의 자유`야말로 민주국가에서 정치를 꽃피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치인들은 말로 일어서고 말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동지들을 규합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정치인들이 잘못된 `혀 놀림`한 번 때문에 망하고 사라져간다는 사실이다.
천신만고 끝에 새 재상 자리를 꿰찬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의 인준과정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지명 이후 쉽게 국회동의를 받으리라던 예상을 깨고, 여지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세언(世諺)에 딱 맞게, 이완구 총리의 지난 몇 며칠은 악몽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혹자들은 약혼기간이 너무 길면 탈이 나기 쉽다더니 정말 그렇다는 빗댐도 내놓는다. 막판에 그를 칭칭 옭았던 변수는 기자들 앞에서 긴장을 풀고 내던진 몇 마디의 말이었다.
알려진 낱낱의 상황들을 재구성해보면, 그날 그 자리에서 이완구 지명자가 했다는 말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좋은 분위기 속에 젊은 기자들 앞에서 제아무리 위세를 떨고 싶은 흥취가 치솟아 올랐더라도 그렇지, 그가 내뱉은 말들은 도를 넘었다. 도대체 무슨 흥분이 `전화 한 통화로 방송국 토론패널을 빼버리게 만들었다`는 이상한 으스댐으로까지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오랜 세월 권력 안에서 성공을 일궈낸 큰 성취의 끝자락에서 잠시 평정심을 아주 내려놓았던 것은 아닐까.
전당대회를 막 끝낸 새정치연합의 집안 꼴을 살펴보면 더욱 가관이다. 최고위원 대열에 오른 정청래 의원의 오만방자한 구업이 하늘을 찌른다. 그는 자신의 혓바닥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히틀러 묘소로 둔갑시키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정신 나간 유태인으로 변질시켜 모욕을 자아냈다. 그의 험구는 남의 당 대표의 행동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깔아뭉개면서 분별심을 완전히 잃은 분노조절장애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최전선에서 늘 갈등의 곡괭이를 휘둘러온 그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당히 2위 득표의 저력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진정성 결핍증을 앓고 있는 양심불량자`, `참 얼굴 두껍다`라는 막말을 들이댔다. 문제는 정청래 의원의 원색적 표현들이 결코 실수로 해석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는 확신범(?)이다.
그의 언행에 대해 네티즌들은 역사책에서나 나옴직한 `정청래의 난()`이라는 명칭까지 붙여주고 있다. 정청래의 행동은 마케팅 이론에서 역설의 효과를 노리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나 타깃 마케팅(Target marketing)을 떠오르게 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는 정치지도자의 3대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들었다. 오늘날 정치인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은 `뻔뻔함`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한 대한민국 정치는 결코 선진화될 수 없다. 천지를 진동하는 구업을 넘어 가까스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반열에 오른 이완구 총리나, 막말퍼레이드로 인해 안팎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정청래 의원 모두에게 테레사 수녀의 충고를 들려주고 싶다. `혀의 침묵을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