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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예외 없어

등록일 2015-03-03 02:01 게재일 2015-03-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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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요즘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살기 어렵다, 많이 힘들다고 말한다. 빈부차이도 유래 없이 커져, 한국 경제가 멕시코 유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규직도 고용 유연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전세 값도 점점 올라 집값의 80 아니 90%에 치닫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이야기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탓을 한다. 세계적 추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이런 당당한 자기 합리화에 화가 나곤 했는데, 이제 미국에 와서 보니 신자유주의가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것은 실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지난 월요일 보스턴로건 공항에 도착했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일 년간 머무를 예정이다. 2001년 8월에도 이곳을 방문해서 한 1년 반 있었다. 예전에 체류했던 곳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1미터 남짓 쌓인 눈은 기억 속의 보스턴과는 다른 풍경을 연출해 왠지 낯설었다. 달라진 풍경만큼 이곳의 사람들의 삶도 조금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14년이 넘는 시간과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이곳 삶도 많이 바꿔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뭔가 사람들이 바뀐 느낌이었다. 내 기억 속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은 우아하고, 매너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은 미소를 잃은 채 바쁘고 다소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교내에서 인도를 걸어가다 뒤에서 오는 학생에게 좀 비켜달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쌓인 눈으로 길이 좁아진 탁도 있겠지만 뭔가 달라진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학생들 중에 유색인종의 수가 많아진 것도 눈에 띠었다 예전에는 대다수의 학생이 백인이고 거기에 중국 한국 등 아시안 학생들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시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도 등에서 온 학생들도 보였다. 뭔가 인종적으로 다양해진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학 상황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지인으로부터 이곳 상황에 대해 듣노라니,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10년 전만해도 일반적으로 미국 학생들은 공대에 그다지 진학하지 않았디. 몸을 많이 쓰고 때로는 밤도 세워야 하는 공대는 기피 됐고, 그 빈자리는 아시아나 인도 학생들이 채웠다. 하지만 지금은 하버드 학부생 중 30%로만 인문 예술 계열로 진학하며, 그 중 70%는 경제나 경영 등 취업이 잘되는 쪽으로 간다고 한다. 하버드 학생들도 학벌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워짐을 짐작할 수 있었다.이런 상황은 한국의 대학에서 취업률을 이유로 인문대가 점점 축소되는 것과 유사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외국인에게 기회의 나라가 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인민박집에서 만난 한 약대 포스트 닥터로부터 외국인이 미국 약사 자격증을 따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와 달리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수입이 좋은 약사가 인기가 높아져, 자격증 취득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미국법에 따라 자격증을 따려면 1천500시간의 인턴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자국민에게 인턴 자리가 우선적으로 배정되게 하다 보니 외국인은 인턴을 할 기회를 갖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만해도 미국에서 약사나 간호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한국의 약사나 간호사들이 취업이민을 많이 갔다. 내 지인 중 한 명도 이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현재 약사로 일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한국이 변한 만큼 미국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차이점이 더 많았고 미국의 풍요와 여유에 압도당할 정도였지만,지금은 서로 좋지 않은 쪽으로 비슷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니 오죽하랴 싶으면서도 과거의 영광이 바래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를 욕하며 이민 갈 거라고 토로하던 댓글이 떠올랐다. 그런 이들이 갑자기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제 세상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으니, 내 나라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잘 고쳐 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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