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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영화 `감기`

등록일 2015-06-10 02:01 게재일 2015-06-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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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정치경제팀장(국장)

2012년 개봉된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격리자가 2천500여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의 내용이 지금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영화 `감기`는 밀입국 노동자로부터 시작된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발생하는 국가 위기를 다룬 재난 영화다.

영화에서는 호흡기를 통해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시민들이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이런 영화 속 설정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우리정부의 초기대응 태세와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일부 권력층이 독점하고 대중은 언론의 발표만 믿다가 혼란에 빠지는 모습 등 영화 초반 전개되는 과정이 현재의 상황과 유사하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사태를 해결하는 영화 속 설정은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 3차감염자가 속출하고 격리대상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부 방역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다. 국내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이 나타났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만 맹신한 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탓이다.

실제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산을 막을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초기 격리대상자에 대한 허술한 관리로 인해 2·3차 감염자가 발생했고, 환자 신고를 묵살 외면했으며, 첫 환자와의 접촉자 파악에도 소극적이었다. 최초 환자가 발생한 이후 내놓은 대책과 예방도 모두 오판으로 드러났다. 보건당국조차 스스로 메르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고, 이것이 총체적 부실대응으로 이어졌다.

정부 또한 메르스 대책에 우왕좌왕했다.

학교 휴업을 놓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상반된 주장을 폄으로써 학생, 학부모들의 극심한 불안을 초래했다. 환자 발생 및 방문 병원 공개를 놓고 정부는 각종 부작용을 내세워 지난 7일까지 공개를 거부했고 이에 인터넷공간에는 민간인들이 만든 `메르스 맵`까지 등장했다. 한 의사 감염자와의 직간접적인 접촉자가 수천명에 달한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야 기자회견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가 즉각 비판하면서 메르스를 놓고서도 여야는 정쟁을 벌였다. 대통령은 한차례 대책회의를 공개 주재한 것 외 침묵하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국립중앙의료원과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를 방문했다.

정부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기 전까지 이번 사태를 엄중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고, 우리 경제와 국가 이미지가 걸린 사안인데도 그 파장을 예측치못했다.

전염병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초 중화권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2003년 2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9%로 전분기(10.8%)보다 급락했다. 홍콩도 그해 1분기에 4.1%였던 성장률이 2분기엔 -0.9%였다.

현재 국내 경기는 수출이 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개월째 0%대다. 내수 회복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중화권 관광객들이 한국 방문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고 시민들이 다중집합장소를 꺼리면서 관광, 음식, 숙박업 등 수요산업 전 부문이 휘청대고 있다.

국민들은 우리정부의 안전의식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위기대응 능력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이 국가를 믿고 살아갈 것인가라며.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의 감염병 대처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질병 후진국 소리를 들으며 국격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관련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세계 유수를 자랑한다던 의료강국에서 감염병 하나를 다스리지 못해 우와좌왕하는 나라라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훗날 영화 `감기`처럼, 우리나라의 감염병 대처능력을 비판하는 `한국판 메르스` 영화가 세계 어디에선가 만들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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