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에 방문교수로 온 후 만난 법학대학원 `박사 후 과정`(post-doc) 연구생이 있다. 이 연구생의 말로는 봄 학기 중에는 법대에서 매일 발표회와 세미나가 있기 때문에 공짜 점심을 해결했다고 한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필자가 소속된 연구소만 해도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의 발표회가 있는데 늘 점심이 제공된다. 이런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하버드 대학교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버드 대학교를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은 `기부금`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버드에 있다 보면 사람의 이름을 새긴 건물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버드 대학의 중앙도서관인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도 그 중 하나이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1912년 타이타닉의 침몰로 사망한 하버드 졸업생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의 부모가 대학 측에 도서관 건립비를 기증해서 지어진 것이다. 1915년 6월 24일 졸업식에서 정식으로 개관됐으며, 올해 건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크게 치러졌다. 건물에 새겨진 해리 와이드너의 이름은 이 도서관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의 짧은 생애와 달리 영원할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에는 `Harvard Art Museum`이라는 이름의 굉장히 좋은 미술관이 있다. 아담한 삼층 건물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엄청나게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필자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 미술관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소장돼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이 예술품들은 모두 기부된 것이거나 기부금으로 구입한 것이다. 이 미술관은 세 개의 미술관, 즉 Fogg 미술관, Busch-Reisinger 미술관, 그리고 Arthur M. Sackler 미술관을 합한 것으로 이 세 개의 미술관은 모두 기부자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
미국인은 아니지만, 2014년에는 홍콩의 부동산 재벌 T.H 챈이 3천500만 달러를 하버드 보건대학교에 기부했으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대학원의 이름이 T.H 챈 보건대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올 6월 초에는 헤지펀드업계의 거물 `존 폴슨`이 모교인 하버드 대학교에 4억 달러를 기부했다. 이는 하버드대 역사상 최대 기부액으로, 이것은 하버드 대학교가 돌체스터에 짓게 될 공대 캠퍼스에 사용될 예정이다. 하버드측은 이 캠퍼스 명칭을 `하버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학`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많은 부자들이 하버드 대학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건물이나 대학의 이름 앞에 붙이기를 원해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부자들은 기부를 통해서 하버드 대학교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 대학교가 미국 아니 세계에서 갖고 있는 명성과 특별한 지위를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럼 점은 폴슨이 2007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이용한 비윤리적인 치부로 인해서 생긴 불명예를 기부 행위로 상쇄하려고 한다는 비판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하버드 대학교에 쏟아지는 엄청난 기부를 보면서, 우리나라 부자들이 한국 대학에 기부를 잘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는 그다지 공유하고 싶은 명성과 특권이 없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즉, 기부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굳이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충분한 명예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기부에 무관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기부자가 기부를 통해서 불멸의 명예를 얻는다면, 기부한 쪽과 기부 받은 쪽 중 어느 쪽이 더 수혜자인지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한국에서도 조성이 된다면 대학에 대한 기부가 점점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