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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비자는 진짜 왕인가?

등록일 2015-08-11 02:01 게재일 2015-08-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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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외국에 있다 보면 한국과 비교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인들의 `참을성`이다. 이들은 웬만큼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체로 묵묵히 참는 편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금방 핏대 올리며 항의하거나 전화나 게시판 등을 통해 불만들을 표현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예전에 필자는 `디트로이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데, 운행이 취소됐다면서 6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릴 없이 6시간을 기다리면서 만약 한국이었다면 승객들이 삿대질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지인의 경우, 공항에서 수화물 창구에서 여행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처음에 한 두 개만 나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기다리다, 한 승객이 공항 직원 쪽을 향해 `기침`을 했다. 그 때야 직원이 화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서 살펴보았는데, 큰 짐이 입구에 걸려서 못나오는 바람에 다른 짐들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짐을 손으로 끌어내자, 승객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고 한다.

또, 이베이와 같은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문제가 생겨서, 고객센터에 문의전화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적어도 3명 정도의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한다. 뒤로 갈수록 좀 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영어가 서툰 필자가 같은 말을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대체로 다 해결되는 것과 많이 차이가 난다.

택배 배달도 그렇다. 한국에서 소비자들의 불평불만이 많은 것 중의 하나가 `택배`서비스인데, 미국의 택배는 더하면 더하지 덜 하진 않다. 미리 언제 물건을 배달하러 온다는 연락도 없고, 물건을 주러왔다가도 문 앞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택배사 직원은 `언제 다시 오겠다, 혹은 사무실로 물건을 수령하러 오라`는 종이만 남긴 채 가버린다. 며칠 그런 일을 반복하다가 지쳐서 결국 사무실로 물건을 직접 가지려 간다.

요즘은 미국도 한국처럼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전화나 웹사이트 등으로 문의를 하거나 물건을 사고 나면 꼭 상담자를 평가해달라거나 서비스에 만족하는지를 평가를 해달라는 문자나 e-메일이 온다. 이렇게 고객 만족 평가를 심하게 하는 것을 보면 미국도 한국처럼 힘이 없는 말단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담자 자체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일처리가 되는 시스템이 매우 불편하고 번거롭게 되어 있는 것을 고치는 것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처럼 소비자에게 친절한 사람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친절함은 한국 사람들의 양은냄비 같은 급한 성격과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갖는 공격적인 태도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매스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갑질 논란`이나 `감정 노동자` 학대 문제 등은 모두 소위 고객들의 거친 행태가 일반화됐음을 보여준다.

보통 미국은 `소비자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맥도날드나 담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몇 십억을 손해 배상 받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일대일로 대면하는 서비스에서 소위 고객이 종업원에게 공격적이거나 무례한 일은 매우 드물다. 그들은 예의바르게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린다. 어떤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내가 직접 상대하고 있는 직원의 문제라기보다는 회사의 시스템적인 문제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매일매일 (대)기업에게는 지면서도, 그 말단 수행자에 불과한 직원들에게만 이기려 든다. 한국의 소비자가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될 때 아마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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