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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다

등록일 2015-08-12 02:01 게재일 2015-08-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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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태<br /><br />대구본부 부장<br /><br />
▲ 김영태 대구본부 부장

요즘 세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롯데가(家) 신동주·동빈 간의 `형제의 난`을 보노라면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게 된다. 한국 재벌가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의 난은 현대 왕자의 난, 삼성 형제의 난 등을 비롯, 셀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형제는 피를 나눈 관계지만, 서로 내면이 다르고 애증 관계는 더 강렬해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형제 사이에 벌어졌다. 아담과 하와(이브)의 맏아들 카인은 여호와가 동생인 아벨만을 총애하자 시기심에서 아벨을 죽였고, 훗날 스위스의 한 정신분석학자가 이를 바탕으로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형제간에 나타나는 갈등과 대립을 뜻하는 카인 콤플렉스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숱하게 전개됐고, 재산과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진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형제의 난은 있지만, 자매의 난은 없다는 데서 색다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태초부터 남자의 DNA에 숨겨져 있던 사냥본능이 현대에 와서는 자신의 확고한 지위와 회사를 차지하려는 욕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애 좋은 형제 이야기 역시 무수히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 양녕대군과 세종을 들 수가 있다. 조선 초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장자로서 태종으로부터 일찍 세자에 책봉됐다. 하지만,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미친 체 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파락호 생활까지 감행, 셋째 동생이 세자로 책봉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효녕대군이 세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 태종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하자 효녕대군을 발길로 걷어차며 “충녕을 모르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결국 효녕대군도 양녕대군의 고심을 깨닫고 절에 들어가 북만 치며 살았고, 자신은 해괴한 행동을 거듭한 끝에 폐립된 후 자유로운 몸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시를 짓고 살았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롯데그룹 지배권을 둘러싸고 한 살 터울의 형제가 벌이는 주도권 다툼은 좀처럼 보기힘든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역대 재벌가의 형제의 난 중에서도 시청률 최고라 할 만하다. 가질 만큼 가진 이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대다수 국민은 롯데그룹이 누구에게 넘어가는 지에 대해서는 그리 궁금해하지 않는다. 폭염속 재미있는 가십거리라 여길 뿐이다.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은 94세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동생 신동빈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신 회장의 차분하면서도 조직적인 반격으로 실패했다. 이번 형제의 다툼으로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기업인으로서 국내 재계 서열 5위까지 오른 신격호 총괄회장의 창업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됐다. 신동주·동빈 형제도 어렸을때는 순수한 동심이 있었을 것이지만 오늘과 같이 피를 나눈 형제가 비난에 비난을 더하고, 서로 자신이 롯데가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상황으로 변질되는 극단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형제의 싸움으로 인해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주식도 곤두박질 치고 있다. 롯데쇼핑은 10일 현재 20만4천500원으로 52주 신저가, 롯데케미칼도 3일 연속 하락하고 롯데제과와 롯데손해보험 등 롯데그룹주는 전반적으로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주식 약세에는 신동주·동빈 형제가 폭로전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 국민의 미움을 사 롯데그룹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여파가 포함돼 있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롯데가 형제와 일족들이 총수자리를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라는 재벌가의 속설이 새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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