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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다가오는데…

등록일 2015-09-02 02:01 게재일 2015-09-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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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br /><br />편집부국장
▲ 김명득 편집부국장

“추석이 다가오지만 고향가기가 겁이 납니다. 갈 생각도 별로 없고요….”

포항철강공단 내 모 업체 팀장인 B모(46)씨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 경영이 너무 나빠 출근하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이고, 사장 대하기가 바늘방석이라는 것. 그는 이런 분위기라면 올 추석에 고향 가겠다고 상여금 달라는 소리를 차마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불과 6~7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잔업에 야간수당, 그리고 명절 때마다 두둑하게 상여금도 챙겨 줬는데, 요즘엔 기껏해야 고향 갈 차비 정도(30만원)만 줘도 감지덕지라는 것.

포항철강공단이 예전같지 않다.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IMF외환위기를 끄떡없이 극복했던 포항철강공단이 이번엔 무척 힘겨워하고 있다. 포항철강공단 내 270여개 업체 가운데 영업이익을 내는 업체는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서 그런지, 하룻밤 사이에 무섭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 모 업체 L모 이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깜짝 놀랐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 뒀다는 것. 불과 두달전에 그와 통화까지 했는데 말이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갑자기….”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회사에서 나가라하면 별 수 있습니까. 회사 내 외주 하청업체 사장자리 하나준다고 하니 이거라도 잡아야 하기에….”라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또 다른 업체의 L모 상무는 6개월 전에 회사를 그만 뒀다. 그는 회사가 경영압박을 받으면 정리해고 1순위가 임원이라는 것. 계속 적자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사 사정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진해서 사표를 썼다. 호탕한 성격의 그는 술도 좋아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아는 사람도 많았고, 고향이 포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위에는 늘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자 그를 중심으로 만나던 사람들조차 하나 둘 연락이 끊기고 이제는 아예 감감 무소식이다.

3단지 내 모 업체에 근무하던 C모 과장도 몇 개월전에 스스로 옷을 벗고 나온 인물. 회사가 비전도 없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발전 가능성도 없고 해서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 역시 윗분(?)의 눈치 때문에 그만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다른 업체의 J모 상무는 지난주 회사내 관리파트에서 현장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현장 책임자인 상무가 퇴직했기 때문에 두가지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

철강공단업체에 근무하는 임원들은 그야말로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다. 현재 철강공단 업체에 남아 근무하고 있는 모든 임원, 상사 대부분이 이 같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들 업체는 자기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짜놓고 매일 아침마다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수출이 줄다보니 재고가 쌓이고 매출은 급격히 줄었다. 그렇다고 근로자들을 마냥 놀릴 수도 없고, 이래저래 묘안을 짜내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질 않는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생존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자금사정이 조금 나은 대기업들이야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위기를 버텨내겠지만 자금력이 약한 영세업체는 사실상 존폐기로에 서 있다. 견디다 못한 일부 업체들은 아예 공장 문을 닫았다.

추석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경영자나 임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매년 주던 추석 상여금과 선물을 안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고향 갈 때 부모님께 드릴 선물 값은 줘야지요…”라며 긴 한숨을 내쉬던 모 업체 K부사장은 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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