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초기 나관중이 원작자로 되어 있는 `삼국지(三國志)`는 기묘한 무용(武勇)과 지모(智謀)로 이어지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전투전략기술로 화려하다. 이야기의 전개가 적당한 템포로 진행되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가는 수법이 매우 뛰어나 중국의 많은 역사소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인정받는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공천전쟁에 돌입했다. `정치생명`까지 내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작심에는 막강한 결기가 실려 있어 보이지만, 결코 앞길이 순탄치 않다. 새누리당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만들어놓은 지금도 당내에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벌써부터 7(일반여론)대3(당원투표)이니, 8대2니 하는 대안들이 범람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 후 퇴진압박에 몰린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를 꾸려 `당 개혁`을 맡기는 형태로 탈출구를 모색해왔다. 하지만 당 혁신위가 만들어 내놓은 개혁안은 당내 비주류들의 비토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안철수 의원은 공개서한을 통해 혁신위가 제시한 공천개혁안을 정면 반대하고, 대안으로 `오픈프라이머리`도입을 주창했다.
정당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구현되려면, 정당이 합리적인 공천시스템을 작동시켜 정상적으로 공천하고 분명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불행하게도 우리 공천역사는 밀실공천, 공천장사, 야합정치, 나눠먹기 공천…등의 부끄러운 이름들이 장식해왔다. 그 모든 흑역사를 종식시킬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오픈프라이머리`다.
제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의 기형적 정치환경에 접목해보면 불안정한 요소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당내 역학관계의 변이와 예상 궤적을 짚어보면 도무지 간단한 문제일 수가 없다. `오픈프라이머리`성취를 위해 김무성 대표가 반드시 넘어야 할 친박(청와대)과 야당의 장벽은 결코 만만한 장애물이 아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막아서고 있는 핵심요소는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명분 뒤에 숨어있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낙하산 공천` 여지다. 퇴로를 안전하게 지켜줄 든든한 호위무사가 더 필요한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역설을 어떻게 읽고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강진(强震)속에 휘둘리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내놓는 `공천혁신`방안은 반대파들에게 무조건 `학살음모`로 낭독된다.
대권을 꿈꾸는 김무성 대표는 20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친박에게 온전히 내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이후까지 친박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든든히 스크럼을 짜고 있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야당 문재인 대표 역시 그 자신의 대권가도를 책임질 친노 동패들이 국회에서 주춧돌과 기둥역할을 해야 할 까닭이 다분한 형편이다.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정치역학 속에서 주요 정치인들의 사천(私薦) 욕망은 그 뿌리가 깊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현역들은 `국민공천`에 대해서 거부감이 높지 않다. `오픈프라이머리` 깃발이 오르고 나서 지역정가에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정치신인들도 `한 번 해보자`는 심리가 발동되는 모양이다.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래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이런 저런 부정론은 권력 눈치를 보는 `구실`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명현현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끝내 좋은 약을 못 먹고 고질병을 이대로 악화시킬 것인가. `오픈프라이머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볼 생각은 아예 접고, OX갈등에나 빠지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20대총선 공천전쟁에서, 누가 유비가 되고 누가 조조역할을 하고 누가 제갈량이 될 것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