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기온 변화에 몸이 멀미를 느끼는 요즘이다. “순식간”이라는 말보다 지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정말 순식간이다. 기온 변화는 곧 계절 변화로 이어진다.
“순식간”은 자연에 큰 혹을 하나 붙여놓았다. 혹의 이름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매혹(魅惑)이다. 그 혹 안에는 요정이 있는데, 그 요정은 색의 마법을 가졌다. 참을성 없는, 그리고 배려를 모르는 인간들과는 달리 색채 요정은 9월 동안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금씩 나무에 색의 마법을 부린다.
마법에 걸린 9월 가로수들은 곧 있을 자연의 가을 축제에 대한 소식을 나뭇잎에 적어 인간 세상으로 띄워 보낸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엔 매혹이 자라고, 자연에 매혹된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진다. 그 풍성함에 세상은 살맛이 난다.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자연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파는 가게가 우리 사회에도 있다. 그것은 바로 “미리내 가게”이다. “미리내”하면 많은 사람들은 은하수를 떠올린다. 그래서 승천한 용을 생각하며 은하수를 파는 가게인가 하고 나름대로 상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미리내 가게는 이와는 다르다. “미리내”는 부사 “미리”와 동사 “내다”의 합성어이다.
이를 풀어보면 “..을/를 미리 내다”이다. 그럼 무엇을 미리 내는 것일까. 그것은 돈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받기 전에 먼저 돈을 지급하는 “선불(先拂)” 가게와는 개념이 다르다. 선불가게가 자신을 위해 먼저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면, 미리내 가게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을 미리 내는 것이다. 이 때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소위 말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등 사회 약자들이다.
미리내 가게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손님의 자발적인 기부로 남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의 가게를 이르는 말”. 미리내 가게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고착화 된 우리 사회에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인 기부(寄附)! 우리는 기부의 소중함과 필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 안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기부는 거창한 것이다`는 기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나눔에 대해 인색해졌다. 체면을 중요시하고, 남의 이목에 큰 신경을 쓰는 우리 사회에서 기부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430번째 가게가 문을 연 미리내 가게는 분명 우리에게 기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일부 사람들은 복지 강국인 우리나라에 아직도 밥 굶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가지고 미리내 가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이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등 아직도 우리 사회엔 복지 사각 지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때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더 따뜻한 희망이 담긴 말 한 마디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자연이 색의 마술을 부리는 하늘 깊은 가을 날, 먹거리와 생태의 소중함을 배우기 위해 산지여정을 떠났다.
수업 장소는 전라도 완주와 충청도 서천.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필자는 은하수 같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미리내 가게에서 부모님 생각을 하며 짬뽕 두 그릇 값을 미리 낸 회사원에 대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