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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

등록일 2015-10-20 02:01 게재일 2015-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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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지난주에 지인들과 만나서 시를 같이 읽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편의 시를 가지고 1시간 반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경험했다. 감상의 시는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 (I`m nobody, who are you?)였다.

이 시의 원작은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예요. 당신은요?/당신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인가요? 역시?/그렇다면 우리들은 짝이네요!/말하지 말아요! 그들이 선전할 거예요!//감히 어떻게 대단한 사람이 되겠어요!/어떻게 공개적으로 개구리 같이/누군가의 이름을 이렇게 긴 유월에 말하겠어요/존경스러운 습지에다 대고!

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시가 늘 그렇듯이 정확하게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요, 그들이 선전할 거예요”의 의미를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 말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그것을 떠들어댈 거예요”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미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리 없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누군지 말하지 말아요.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떠들어댈 거예요”로 해석을 했다.

그러자 2연의 내용과 연결이 되면서 시 전체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2연은 대중들의 입에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유월은 한 해 중, 해가 가장 긴 달이다. 따라서 유월에 개구리들이 하루 종일 울어대듯이 우리가 누군지 알려지면 그들은 개구리처럼 우리들에 대해서 지독히도 오랫동안 떠들어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로는 사교계에, 요즘으로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그들에게 회자되는 것에 대해서 디킨슨은 무척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녀가 태어난 집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1870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에밀리 디킨슨과는 매우 다른 인간 유형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고, 매일매일 욕을 먹으면서도 그들의 에고는 전혀 상처받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한국어로는 `낯 두꺼운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두꺼운 피부(thick skin)`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치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누군가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로널드 트럼프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가 경선에 나온 것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전 세계에 선전하고 싶어서라는 해석과 함께. 이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그의 이름은 깊이 각인되었으니까 말이다.

트럼프는 18일 미국 폭스뉴스의 크리스 월레스 앵커가 진행한 `선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미국)는 한국을 사실상 공짜로 방어하고 있다”며 “2만8천명의 미군을 (한국에) 두고 있으며, 한국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은 미군 주둔 분담금으로 9천800억원을 해마다 분담하고 있다. 이처럼 억지 주장을 공공연히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늪지 같은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읽던 우리들은 갑자기 풍자적으로 돌변해서, 로널드 트럼프의 페이스 북에다 에밀리 디킨슨의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를 헌정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심하였지만, 어느새 유쾌한 풍자꾼이 되어 정치인의 SNS를 들락거리는 것으로 감상 시간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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