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막바지, 가을 기운이 역력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정도를 넘어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낮의 때늦은 더위도 그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대신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다. 나무는 잎사귀마다 형형색색의 고운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짬을 내어 이 계절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그 무엇들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들 있다.
지난 주말 연휴를 이용해 강원도 속초와 고성 일대로 1박 2일의 강행군을 감행했다. 설악산이 자리 잡은 지역이니 단풍 나들이를 다녀온 게 아닌가 생각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호사를 누릴 형편은 아니었다. 중학생 아들놈의 학교 동아리 활동에 부모 노릇하느라 잠시 따라나섰을 뿐이다. 하여튼 이유에 어찌됐든 간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천혜의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강원도를 수박 겉핥기라도 다녀온 기분은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 여정 중에 그 동안은 무심히 보아 넘겼던 한 가지 장면에 시선이 머물렀다. 시군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그 지역의 이러저러한 축제를 홍보하는 현수막들이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 봐도 `아, 이 지역은 이게 특산물이구나!`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고, 이처럼 좋은 계절에 여행길에 나선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지역 살림꾼들의 고심도 읽어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일 년 내내 축제의 연속이다. 계절과 지리적 특성을 살린 축제에서부터 지역 문화제, 특산물 등을 전면에 내세운 각양각색의 축제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 그 중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만 허락된다면 한번쯤 발품을 팔아 집을 나서고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는 축제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거나 저거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굳이 이런 식의 축제를 왜 하는가 싶은 축제가 허다하다. 물론 지역을 홍보하고, 덤으로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축제를 기획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축제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내실 있는 콘텐츠로 준비되었는지를.
지난 10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한국 영화 산업의 역량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산함에 선구적 역할을 해 온 국제적 페스티벌이다. 이보다 앞서 안동에서도 2015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이 누적인원 100만 명을 상회하는 성과를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그리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문화 산업으로 우뚝 선 축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축제는 과잉이 아닌가 싶다. 별반 두드러진 특성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콘텐츠 자체도 엉성하기 그지없는 수준 낮은 축제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럴싸한 이름 붙인 축제 하나 운영하지 않으면 무엇엔가 밀리기라도 하는지 다들 안달이 난 모양새다.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어가자. 단순히 전시성 업적 쌓기 용으로 포장한 허울뿐인 축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고 그 속에서 무언가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며, 아까운 재정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 그저 그럴듯한 이름 붙여 밀어붙이는 축제, 그러다 어느 순간 있었는지도 모르게 슬쩍 사라지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고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하다.
시월의 풍요와 여유가 더욱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계절에 얼마나 많은 축제가 진행 중이고, 또 계획 중인지 대충 살펴보았다. 열 손가락을 몇 차례 꼽았다 폈다 해도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축제가 열거된다. 과히 축제 공화국이다. 이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 부터가 고민이다. 우선은 찾아가서 즐기자. 이러쿵저러쿵 탓만 하고 뒷짐 지기보다는 축제의 한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함께 누리자. 그 다음에 다시 한 번 따질 것은 따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