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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민주주의`

등록일 2015-11-10 02:01 게재일 2015-11-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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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역사는 `다수(多數)와 정의(正義)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입증한다. 어떤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의 많고 적음을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정하는 것은 본질적인 모순을 품는다. 우리가 대의민주정치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핵심 작동원칙으로 삼고 있는 `다수결(多數決)`은 그렇게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다수결` 이외에 불합리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의사결정방식을 발견하거나 고안해내지 못했다.

레닌은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습 왕조국가로 돌연변이한 북한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몰락을 부른 결정적인 허점이 `다수결을 가장한 소수독재`였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한때 온 세상을 현혹했던 레닌의 공산주의는 첫 단계에서 `소수독재`의 흉악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렇듯, `다수결`은 그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고수해야 할 소중한 원칙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이 정치권에서 또 다시 갑론을박의 소재가 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수십 년 멱살잡이·몸싸움 등 유치한 물리적 충돌을 거듭해온 국회의 추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단행된 혁신대책이다. `선진화법`이라는 작명이 뜻하듯이, 이 법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선진화된 정치풍토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고상한(?) 입법취지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해만에 후진적 정치구조 안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 법은 우선 국회의사당 안에서 과반수를 의결조건으로 하는 절대다수결(Absolute majority)을 실종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원천봉쇄하고, 쟁점법안을 해결하기 위해 운영하는 안건조정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재적위원의 2/3로, 안건신속처리제도의 안건결정도 재적위원의 2/3로 정하고 있다. 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푸는 데는 재적의원 3/5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는 등 제한다수결(Qualified majority)을 채택하고 있다.

어느 정당도 2/3나 3/5을 차지하지 못하는 정당구조 현실에다가, 당론이 모든 의사결정을 강제하는 환경 속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실질적으로 `만장일치법`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선진화법`의 폐해는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법은 `소수`로 하여금 “어디, 우리의 동의를 받지 않고 뭐든 할 수 있나 봐라!”하는 몽니의식을 잔뜩 키운다. 국회 안에서 실력행사를 전혀 하지 않고도 `소수`가 `다수`의 손발을 꽁꽁 묶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투표를 통해서 다수당과 소수당을 가리는 일이다. `소수`가 용인하지 않는 한 `다수`가 아무것도 못하는 정체체제 아래에서 도대체 한 표라도 많은 쪽이 승리하는 단순다수결(Simple majority) 방식의 각종 선거가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다수`가 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뜻대로 할 수 없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선거`마저 가치를 송두리째 상실해가는 이 기막힌 부조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소수 독재`가 `다수의 횡포`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것은 수십 년 현대정치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고양이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격`으로, 매번 드잡이판으로 번지는 국회의 추태를 잡으려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천만뜻밖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일을 안 하고 반대만 해도 되는` 정치인으로, 여당 국회의원들은 `일을 못 해도 핑계 댈 게 있는` 정치인으로 길들여져가고 있다. 서둘러 고쳐야 한다. 무조건 고쳐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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