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선에 가까워지면 개헌 논의를 하기 어렵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각제는 부침이 있고 진영대립이 심해 정·부통령제를 선호했는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도를 검토해봐야 한다.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는 게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2014.10.16일 김무성)
“(개헌은)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될 부분 아니겠나.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2015.11.4일 최경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2015.11.12일 홍문종)
발언자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마치 한 사람의 발언으로 이해될 만한 `개헌` 발언들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모델은 1년여 전 이른바 `상하이 개헌발언`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서 언급됐다. 대통령이 외교ㆍ국방 등 외치를, 국무총리가 행정수반으로 내치를 분할 관장하는 권력구조를 말한다.
김 대표는 2014년 정기국회 이후에 `개헌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으로 예측했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당시 여야 개헌론자들은 `상하이 개헌발언`을 일제히 반겼으나, 청와대와 친박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김 대표는 “대통령께 죄송하다”면서 `불찰`을 자인하고 물러섰다. 발언내용 자체가 아니라, 집권 3년차 국정동력을 소진시킬 `정치혼란`우려에 대한 공감대가 작동됐다.
꼭 1년여가 지난 지금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가 `5년 단임 정부의 한계`를 언급하며 개헌논의의 뚜껑을 건드렸고, 또 다른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적시하며 `개헌 불가피성`을 직토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김무성 대표에게 `(개헌론은)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당분간`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지난해 박 대통령의 금언령(禁言令) 메시지와 최근 홍문종 의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제 개헌론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홍 의원의 발언을 제압하고 나선 사람들은 친박 일색이다. “친박 내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는 손사래질도 나온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김무성 대표에게 무관(無關)을 해명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개헌론이 들썩일 때마다 내남없이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들던 인사들도 대개 눈치만 보고 있다. 한 차례 뜨거운 맛(?)을 본 탓인지, 김무성 대표는 견해를 묻는 기자에게 “당사자(홍문종 의원)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고, 비박계 일부는 `김무성 대표를 옥죄기 위한 간보기` 정도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심각한 의심을 야기하는 대목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친박 인사가 총리가 되는 이원집정부제 구성에 대해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한 홍문종 의원의 말이다. 야권에서는 홍 의원의 발언을 `김무성도 잡고 야당도 잡아 영구집권하려는 친박의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는 난해한 심층분석까지 나돈다. 물론, 진위를 예단할 당장의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개헌`문제가 당리당략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개헌론`이 수년 간 정치권 안팎에서 들썩거린 것으로 보아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개헌`은 국운을 가르는 역사적 과업이다.
그 어떤 주장도, 어떤 시도도 당쟁의 영역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하찮은 생명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교회 십자가를 훔치는 일이 온당한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 것인가. 저 난마처럼 얽힌 `금지된 장난`의 빗장 비밀번호는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