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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 빗장 풀리나

등록일 2015-11-17 02:01 게재일 2015-1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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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다음 대선에 가까워지면 개헌 논의를 하기 어렵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각제는 부침이 있고 진영대립이 심해 정·부통령제를 선호했는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도를 검토해봐야 한다.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는 게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2014.10.16일 김무성)

“(개헌은)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될 부분 아니겠나.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2015.11.4일 최경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2015.11.12일 홍문종)

발언자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마치 한 사람의 발언으로 이해될 만한 `개헌` 발언들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모델은 1년여 전 이른바 `상하이 개헌발언`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서 언급됐다. 대통령이 외교ㆍ국방 등 외치를, 국무총리가 행정수반으로 내치를 분할 관장하는 권력구조를 말한다.

김 대표는 2014년 정기국회 이후에 `개헌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으로 예측했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당시 여야 개헌론자들은 `상하이 개헌발언`을 일제히 반겼으나, 청와대와 친박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김 대표는 “대통령께 죄송하다”면서 `불찰`을 자인하고 물러섰다. 발언내용 자체가 아니라, 집권 3년차 국정동력을 소진시킬 `정치혼란`우려에 대한 공감대가 작동됐다.

꼭 1년여가 지난 지금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가 `5년 단임 정부의 한계`를 언급하며 개헌논의의 뚜껑을 건드렸고, 또 다른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적시하며 `개헌 불가피성`을 직토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김무성 대표에게 `(개헌론은)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당분간`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지난해 박 대통령의 금언령(禁言令) 메시지와 최근 홍문종 의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제 개헌론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홍 의원의 발언을 제압하고 나선 사람들은 친박 일색이다. “친박 내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는 손사래질도 나온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김무성 대표에게 무관(無關)을 해명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개헌론이 들썩일 때마다 내남없이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들던 인사들도 대개 눈치만 보고 있다. 한 차례 뜨거운 맛(?)을 본 탓인지, 김무성 대표는 견해를 묻는 기자에게 “당사자(홍문종 의원)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고, 비박계 일부는 `김무성 대표를 옥죄기 위한 간보기` 정도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심각한 의심을 야기하는 대목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친박 인사가 총리가 되는 이원집정부제 구성에 대해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한 홍문종 의원의 말이다. 야권에서는 홍 의원의 발언을 `김무성도 잡고 야당도 잡아 영구집권하려는 친박의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는 난해한 심층분석까지 나돈다. 물론, 진위를 예단할 당장의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개헌`문제가 당리당략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개헌론`이 수년 간 정치권 안팎에서 들썩거린 것으로 보아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개헌`은 국운을 가르는 역사적 과업이다.

그 어떤 주장도, 어떤 시도도 당쟁의 영역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하찮은 생명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교회 십자가를 훔치는 일이 온당한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 것인가. 저 난마처럼 얽힌 `금지된 장난`의 빗장 비밀번호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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