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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볼 수 있는 눈

등록일 2015-12-24 02:01 게재일 2015-1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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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애<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한 해의 끝에서 숨을 고르고 되돌아보면, 2015년도 작년과 그다지 차이 없이 일하는 기계처럼 부산을 떨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시간들로 채워진 것 같다. 새로 맞는 해는 올해처럼 별 볼일 없이 바쁘지 않고 인간답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한 지가 어제아래 같은데….

며칠 남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차분하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기 시작하는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성석제 선생님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0)에 등장하는 황만근과 민순정, 두 인물이다. 이 소설은 황만근이라는 인물이 실종된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황만근이라는 인물은 그 마을에서 `있으나마나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잣대로 볼 때 뭔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장성한 아들을 둔 그를 부를 때조차 `만그이` 또는 `반그이`라고 놀리듯이 부른다. 그가 어눌하게 발음하는 단어들 또한 놀림감이 되고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니다가 넘어진 숫자만도 백번이 넘는다는 `백분(번)`, 짧은 혀로 십원을 말할 때 `찝원(십원)`, 두 명의 사람을 칭할 때 `두 바리(마리)`등의 단어를 어눌하게 발음하는 것은 동네 사람들 우스갯소리의 재료가 될 뿐, 그가 지닌 인간적인 면을 볼 줄 아는 동네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山役) 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을 찍는 일 또한 동네 사람 누구보다도 많이 하는`사람이다. 그는 어눌한 몸을 가졌지만,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도맡아 하는 진실한 사람이었다. 작가는 황만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여덟달만에 태어났다고 해서 팔푼이라는 별명을 지니기도 한 황만근은 매사에 진정성을 보이는 사람임과 동시에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열다섯 살부터 식사, 빨래, 청소 등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들과 달리 아들의 불구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머니를 위해서 그가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다 보니, 일류 요리사처럼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문제는 늘 일상을 함께 해온 마을 사람들이 황만근이 지닌 인간적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갓 바보같은 황만근이 없어졌다는 일이 귀찮은 일이기만 했다. 하지만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민순정은 황만근의 인간적인 가치를 알아보는 유일한 마을 사람이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가 알아들은 것처럼. 황만근이 실종된 지 일 주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오자, 민순정이 전의 형식을 빌려 황만근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쓰고, 자신도 농촌 마을을 떠난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끝난다. 그가 쓴 황만근선생전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

황만근처럼 진실하게, 민순정처럼 사람의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삶을 추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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