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뛰어난 가인(歌人)이 넘쳐난다. 역사적 자료를 대충만 훑어보아도 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성은 어렵잖게 고증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 탁월성은 현대에 와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 유럽으로까지 위세를 확대하고 있는 한류(韓流)의 거대한 한 축이 이른바 `아이돌` 가수의 활약에 기인한 것임을 두고 볼 때 우리 민족의 음악적 재능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중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각양각색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경신하고, 그때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놀랍게 만드는 신인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점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적 자질을 반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성을 이야기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지난 해 가을 방송이 끝난 유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 젊은 음악인의 노래를 들으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서다. 이십대 초반 나이의 임예송이라는 참가자가 예선에서 불렀던 `양장점`이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들었을 때, `아니, 저렇게 어린 친구가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지?`라며 무척이나 놀랐었다.
겨우 스물을 넘긴 어린 나이의 가수가`양장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지만, 더욱 놀라웠던 까닭은 그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의 가사다. “젊은 날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맘을 굳게 먹고 문을 열고 선, 어느새 때는 바야흐로 20년이 지나갔는데, 간판 위에 쌓여 가는 하얀 먼지들과 같이 내려앉는 근심 걱정에도, 또 건물들은 삭막하게 쌓여 올라가, 이제는 이별해야 하는 건가요. 나의 삶의 장소와 추억들도 이젠 다 허물어지고 무너지네. 내 작은 가게들은. 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같이 좀 살자. 나도 좀 살자.”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이 노래는 조금은 단조로운 곡조로 진행된다. 그러나 오히려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이 보다 잘 전달되는 장점을 지닌 곡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읊조리듯 전해오는 어린 가인(歌人)의 노래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무거운 주제를 일상인의 눈으로 심상하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심상한 전달 속에서도 마지막 구절이 전달하는 울림은 매우 강렬했다.
`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나도 좀 살자`는 소시민의 애끓는 절규가 아직은 이 시대의 아픔을 속속들이 겪어보지 못했음직한 소녀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올 때, 그래서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자작(自作)한 임예송씨는 서울 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에 위치해 있던 오래된 양복점이 어느 날 불현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체인점이 들어선 모습을 목격한 후 양복점 주인의 감정에 이입하여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문을 열었던 가게가 이십 년 세월 속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는 노랫말의 상황은 이미 우리 주변에 일상화된 현실이다. 삶의 터전과 온갖 흔적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극단까지 내몰린 심정에서 같이 좀 살자고, 우리도, 나도 좀 살자고 내뱉는 읊조림은 그 자체로 웅변적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로 넘쳐나는 캠퍼스를 거닐다가 스쳐 지나가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어내기 보다는 절망을 먼저 떠올린다. 과연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그때는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까라고. 취업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이 과연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는지. 이들의 입에서 `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나도 좀 살자`는 장탄식(長歎息)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