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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우리 삶의 연결고리 찾아가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3-18 02:01 게재일 2016-03-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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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반비펴냄.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반비)은 지난해 국내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출간되면서 이목을 끌었던 리베카 솔닛의 신간이다. 전미도서상 후보작, 전비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작으로 오른 주저다. 솔닛은 2010년 한 칼럼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21세기에도 만연한 젠더 불평등의 핵심을 명쾌하게 요약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 단어는 뉴욕타임스 `2010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솔닛은 같은 해 `유튼리더 `선정`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로 선정됐다. 2015년에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 등재됐고, 이 글을 수록한 칼럼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한국에 소개돼 대부분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 아이슬란드와 극지방이다.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프로이켄의`북극 모험`, 체 게바라의`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백조 왕자``룸펜슈틸츠헨``눈의 여왕`같은 구전 동화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활용해 솔닛은 주변의 여러 삶들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마침내 이해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변명하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 혹은 작가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작가는 이를 용서이자 사랑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이런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솔닛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에세이이다.

이 책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로 엮는 큰 주제는 이야기하기의 힘이다. 우리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정체성을 형성해낸다. 솔닛의 말대로 자아는 우리의 삶이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품이자, 만인을 예술가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령 많은 동화들은 문제 해결을 다루는데 동화 주인공들은 그 문제 해결 와중에 `자신`이 된다. 이것은 이야기하기의 기본 원칙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넘어서며 또 다른 누군가가 돼간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도중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만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자아`를 만들어내는 일에 근본적으로`듣기`와 `읽기`의 능력,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프랑켄슈타인`같은 고전이나`백조 왕자`같은 원형적인 서사뿐 아니라 극한의 추위에서 남편과 아이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전 세계가 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우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고 그 후유증으로 자살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북극곰을 잡아먹는 북극곰 이야기, 무엇보다`신데렐라`의 음울한 버전이라 할 법한 솔닛 어머니의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호출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솔닛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다시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다. 솔닛의 이야기인 이 책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그녀의 삶과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연결시킨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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