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원칙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걸까?

등록일 2016-04-05 02:01 게재일 2016-04-05 18면
스크랩버튼
▲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필자는 수업시작 10분 전쯤에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이 시작하는 정각에 출석을 부른다. 출석을 다 부른 다음에 대답하지 않은 학생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준다. 그래도 학생들이 답변을 하지 않으면 결석 체크를 하고, 수업이 끝난 다음 지각한 학생들은 지각 처리를 해준다. 필자와 학생이 정한 출석 처리 기준은 필자가 이름은 두 번 부른 이후도 안 온 학생, 그리고 수업 시작하고 5분이 지나서 오면 지각 처리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지한 대로 지금까지 출석 및 지각처리를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학생들이 많이 지각했다. 그 중 한 학생은 8시 반부터 필자에게 문자와 전화를 계속해서 보내 늦을 것 같은데, 출석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제시한 지각의 이유는 분당에서 통학버스를 탔는데, 차가 분당 안을 빙빙 돌기만 할 뿐 고속도로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예고대로 이 학생은 수업이 한참 지난 후에 교실로 들어왔고, 수업이 끝나자 통학버스 회사에서 써준 `지각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다른 네 명의 학생도 자신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통학버스를 탔는데, 고속도로가 막혀서 차가 늦게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버스회사에서 써준 지각 사유서를 내면 출석으로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분당에서 온 학생의 출석을 인정해줬기 때문에, 이 학생들의 출석도 인정해주기로 하고, 다음 시간에 지각사유서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두 명의 여학생이 자기들은 9시 34분(필자의 수업은 9시 30분에 시작한다)에 교실로 들어왔으니 출석 처리해달라고 주장한다. 이 학생들은 수업시작 후 5분 안에 들어오면 출석처리를 해준 전례를 자신에게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두 번째 출석을 부르고 있을 때 이 학생들은 들어오지 않았고, 그 때는 이미 35분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의 출석 처리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사실, 지각한 학생들 중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이 가장 일찍 왔다. 그리고 앞의 두 그룹은 상대적으로 늦게 왔다. 하지만 앞의 두 그룹은 출석 처리를, 마지막 그룹들은 지각 처리를 했다. 만약 마지막 그룹 학생들이 정말로 34분에 왔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앞의 두 그룹은 상황에 대한 고려를 해주었음에 비해서 마지막 그룹의 경우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필자는 마음이 몹시 피로해졌을 뿐만 아니라, 뭔가 심리적인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마음의 갈등을 느낀 것이다. 더구나 더 늦게 온 학생은 출석처리하고 상대적으로 일찍 온 학생은 지각처리를 했다. 마음 같으면, 모두 지각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고속도로가 막혀서 늦은 것은 학생 탓이 아니니 무조건 지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문제를 다른 동료 교수와 이야기하니 한 사람은 자기는 무조건 지각처리 한다고 말한다. 고속도로가 막히면 그것까지 고려해서 집을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필자처럼 상황을 고려해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는, 필자가 출석을 너무 정각에 부른다며,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강의평점이 낮아진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하지 말고 좀 늦게 부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다들 출석 부르는 것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제각각인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거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 만든 규칙의 적용도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원칙대로만 할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서로 여유를 가질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필자의 경험상 어느 쪽도 쉽지는 않다. 원칙대로 하면 원칙대로 하는 대로 여유 있게 하면 여유 있게 하는 대로 마음의 갈등과 피로함이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든 불만이 있다. 오늘은 원칙의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되는 날이었다.

배개화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