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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산을 걷는 일

등록일 2016-04-29 02:01 게재일 2016-04-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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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산 폭포와 기암과 능선
▲ 공강일
▲ 공강일

■ 끌림 혹은 내연산

내연산, 이렇게 멋진 산이 있다는 걸 불과 몇 해 전에 알았다. 포항에 전시회 관련 일로 오가던 중 그녀와 친해졌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과 사귀기엔 주변머리가 없었다. 등산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그녀는 나를 끌고 산엘 갔다. 명색이 국문과 박사과정생이었데도, 내연산이란 말을 듣고 겨우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내연남, 내연녀와 같은 시시한 말들이었다.

내연산(內延山)은 말 그대로 산의 내부 깊은 곳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골짜기는 완만하게 이어져 등산복이나 등산화 없이도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배려였던 것 같다. 내연산은 폭포와 기암과 산의 곡선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열 두 개의 폭포 중 내가 본 것은 겨우 일곱 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폭포 앞에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문득 이 산을 떠올린 것은 그 깊고 그윽한 내연산의 골짜기, 청하골 때문이었고, 이곳을 걸으며 내가 가진 삶의 무게를 조금은 벗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돌을 얹고 사는 며칠이었다. 어디엘 나가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싫어 주말 내내 방구석에 박혀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내가 홀로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 들은 듯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내 울음을 다 들어준 그분은 차분하고 인자한 목소리로 걸으라고 했다. 물 한 통 들고, 신발 단단히 매어신고 걸으라 했다. 낮게 흐르는 바람도 만져보고, 섞여 흩어지는 향기를 더듬어도 보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가만히 가라앉아 지금의 내 모습이 투명하게 비칠 것이라 했다. 일흔이 넘으신 분의 충고이기도 했지만, 나이를 잊은 정정한 목소리는 어떤 정합적이고 논리적인 말보다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전화를 끊고 그분의 말을 따라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물을 한 통 챙겼다.

■울음을 참는 법

언젠가 백석은 힘든 시간을 보낸 듯했다. 이 시인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애달픈 연시로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방랑자의 기질이 다분했다. 한때 바람머리를 휘날렸던 모던보이는, 1930년대 말, 기자도, 교직도 버리고, 바람을 따라 만주 신경(지금의 창춘)과 안동(지금의 단둥) 등지를 떠돌았다. 그가 정확히 언제 우리나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으로 돌아와 박시봉(朴時逢)이라는 사람의 방(方)에 살게 되었을 때의 심경을 시로 남겼다. 그 시가 한국현대시사에서 절창으로 손꼽히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혹은 잃고, 혹은 잃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떠돌았던 불운한 시대의 시인은 `습내 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 들어 화로를 껴안고 생각에 잠긴다. 어쩌다 사랑하는 아내도, 아내와 살던 집도 사라지게 되었는지, 어쩌다 살뜰한 부모와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지게 되었는지, 그런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을 소처럼 오래도록 되새김질하였다고 한다. 가슴이 메여오고,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흐를 때, 낯이 뜨겁도록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 그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내연산 연산폭포. 내연산 12개의 폭포 중 일곱 번째 폭포다. 골짜기는 깊지만 완만하며, 그 완만한 골을 따라 물도 낮은 소리로 흐른다. 이 산을 걷노라면 분분한 마음 역시 자연을 따라 스스로 그렇게 낮게 내려앉게 된다.
▲ 내연산 연산폭포. 내연산 12개의 폭포 중 일곱 번째 폭포다. 골짜기는 깊지만 완만하며, 그 완만한 골을 따라 물도 낮은 소리로 흐른다. 이 산을 걷노라면 분분한 마음 역시 자연을 따라 스스로 그렇게 낮게 내려앉게 된다.

황량해진 가을부터 눈이 퍼붓는 한겨울까지 백석은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더듬었다. 그러다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려는 회피의 몸짓이 아니라 겸손의 결과일 것이다.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서 비롯한다는 오만을 버린 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자의 깨달음일 것이다. 그리하여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멀리,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게 된다고 그는 쓰고 있다.

백석은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자신을 들여다 본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하면 그 모든 `나`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오래 웅크려야 그 모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일까. 백석은 자신이 가진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고통을 모두 토해내고 그것을 다시 삼켜 버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며칠 동안 고통을 부여잡고 뒹굴 자신이 없다면 걷기를 추천한다. 하늘과 빛과 녹음들 속을 걷다보면 알게 된다. 나를 무겁게 만들고, 울게 만드는 것의 속성이 뚜렷해진다. 더 오래도록 걷다보면, 아픔과 슬픔은 빛이 내려앉듯, 먼지가 내려앉듯 자욱이 내려앉게 된다. 그 걷기의 장소가 내연산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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